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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5년 7월 5일 (토)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아타나시오 (Athanasius)
    같은이름 아따나시오 , 아따나시우스 , 아타나시우스 , 아타나시오스
    축일 7월 5일
    신분 은수자 , 수도원장
    활동지역 아토스산(Mount Athos)
    활동연도 920?-1004년경

       성 아타나시우스(또는 아타나시오)는 920년경 흑해의 남동부 해안 지역에 있는 트라브존(Trabzon, 오늘날 튀르키예 북동부 흑해 연안의 도시)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콘스탄티노플에서 수학하였다. 세례명이 아브라함이었던 그는 부모를 잃은 후 키미나스(Kiminas) 산에서 니케포루스 2세 황제의 삼촌인 말레이노스(Michael Maleinos) 수도원 원장 문하에서 수학하고 수도자가 되었다. 니케포루스 2세는 장군 시절에 아브라함을 자신의 영적 지도자로 삼았었다. 그가 머물던 키미나스 산의 수도원은 소위 ‘라브라’(Lavra/Laura)로 불리는데, 이 말은 은수자들이 성당을 중심으로 개별적인 삶을 사는 은수자들의 집단을 뜻한다. 아브라함에서 아타나시오로 이름을 바꾼 그는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자 이를 피하려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명성을 뒤로 하고 은수자로 살기 위해 그리스 북동부에 있는 아토스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리스 남동쪽 크레타섬(Creta Is.)에서 사라센과 전쟁이 벌어지자 니케포루스 장군과 동행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이 일을 성공리에 마친 성 아타나시오는 아토스산으로 다시 돌아갔고, 황제가 된 니케포루스 2세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963년에 아토스산에 ‘대수도원’(Great Lavra)를 세웠다. 이미 요한 콜로보스(Joannes Colobos)에 의해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 생활이 알려졌으나 정식으로 아토스산에 수도원을 설립한 것은 성 아타나시오가 처음이었다. 그는 외딴곳에 떨어져서 고립 생활하던 아토스산의 은수자들이 체계화된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활하는 수도원을 정착시킨 ‘공주 생활 수도원’(共住生活修道院, Coenobitic Monasticism)의 창설자이다. 그러나 느슨한 체제의 수도원들(Lavras)에 거주하던 많은 아토스산의 수도자들은 이러한 개혁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성 아타나시오의 친구였던 황제가 969년에 죽자 더욱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성 아타나시오를 지지하던 새 황제 요한 1세마저 키프로스(Cyprus)로 떠나면서 어려움을 한층 더해졌다.

       ‘공주 생활 수도원’이란 개혁을 반대하는 이들은 엄격한 형태의 수덕 생활, 즉 모든 세속적 삶을 떠나 광야에서 절대적인 침묵을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했다. 반면 성 아타나시오는 고요한 수덕 생활을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더 중요한 것은 수도자들 상호 간의 친교와 협력이라고 생각했다. 반대파는 콘스탄티노플로 황제를 찾아가 성 아타나시오가 거룩한 아토스산에 세속적인 요소를 들여와 고대의 전통과 규범을 파괴하고 사치스러운 쾌락을 퍼뜨린다고 고발하였다. 황제는 이런 고발을 조사하기 위해 에우티미오스(Euthymios Studitis) 수도자를 파견했는데, 그는 성 아타나시오의 친구였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뜻을 이해하고 대수도원의 형태와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성 아타나시오가 개혁하려는 수도 규칙과 수도 생활 방법이 공적으로 인정받았고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그는 아토스산으로 돌아가 자신이 만든 58개 공동체의 원장이 되었다.

       성 아타나시오의 수도 규칙은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Magnus, 1월 2일)와 성 테오도로 스투디타(Theodorus Studita, 11월 11일)의 공주 생활 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 아토스산 공주 생활 수도원의 창설자인 성 아타나시오는 1004년경 다섯 동료 은수자와 함께 둥근 천장과 연결된 수도원 성당 건물의 마지막 공사를 점검하러 갔다가 돔 전체가 무너지면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설립한 대수도원은 초기에 수천의 수도자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로 성장했으나 오늘날에는 그 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동방 정교회 수도원의 중심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5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인 성 아타나시오가 아토스산에 대수도원을 세우고 공주 생활을 위한 규칙을 제정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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