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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6월 7일 (토)부활 제7주간 토요일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녀 안나(성 바르톨로메오의) (Anne of St. Bartholomew)
    같은이름 낸시 , 니나 , 애나 , 애니 ,
    축일 6월 7일
    신분 수녀
    활동연도 +1626년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의 안나(Anna)는 에스파냐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of Avila)가 위대한 하느님의 종이라고 칭찬하였던 그녀의 특별한 동료였다. 안나는 아빌라에서 4마일 떨어진 알멘드랄(Almendral)에서 농사짓던 페르디난도 가르시아(Ferdinand Garcia)와 마리아 만자나(Maria Manzanas)의 딸이다. 20세까지 그녀는 양치기로 일하다가 아빌라의 성 요셉 수도원에 입회 허가를 받아 가르멜회 수녀가 되었다.

       성녀 데레사는 마지막 7년 동안 늘 안나를 곁에 두고 모든 여행도 함께 하였고,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 사업에 있어서도 안나 만큼 성녀를 협력한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수차례에 걸쳐 안나는 검은 수건을 써야 한다고 했으나 그 때마다 거절하여 늘 평수녀로 살았다. 성녀 데레사가 마지막 숨을 쉰 곳도 안나의 품속이었다. 그 후 6년 동안 안나는 아빌라에서 조용히 살았다.

       그때 프랑스에서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 설립을 종용하자, 성녀 데레사의 후임자인 예수의 안나 수녀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안나 수녀를 포함하여 5명의 수녀를 파견하였다. 그 후 안나는 퐁투아즈(Pontoise) 수녀원의 원장, 그 다음에는 투르(Tours)의 원장이 되었다. 또 네덜란드에 가르멜 수도원을 세웠을 때 안나는 몽스(Mons)로 갔으며, 1612년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에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1612년에 안나가 사망하자 2천 명의 주민들이 시신에 달린 묵주에 친구하러 줄을 설 정도로 그녀에 대한 공경은 놀랄 만큼 빨리 일어났다. 1917년 5월 6일 교황 베네딕토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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