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상봉동성당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5년 7월 21일 (월)연중 제16주간 월요일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알렉산데르 (Alexander)
    같은이름 알레산드로 , 알렉산더 , 알렉산델 , 알렉싼데르 , 알렉싼델
    축일 7월 21일
    신분 군인 , 순교자
    활동지역 마르세유(Marseille)
    활동연도 +292년경

       성 빅토르(Victor)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 주둔하던 로마 군대의 장교였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함께 서방을 통치하며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년 재위)가 마르세유를 방문했을 때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박해에 저항하도록 격려했다. 그로 인해 성 빅토르는 체포되어 지방 장관인 아스테리우스와 에우티키우스 앞으로 끌려갔다. 그는 그들 앞에서 당당히 신앙을 증언했고, 주동자로 황제 앞으로 끌려가 군 복무와 우상 앞에 제사 바치기를 거부한 죄로 잔혹한 고문을 당한 후 지하 감옥에 던져졌다. 그런데 한밤중에 천사들이 그를 찾아왔고 그들의 빛이 감옥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그를 지키던 세 명의 경비병(간수)들은 겁에 질려 그에게 용서를 청했고, 성 빅토르를 그들이 세례받을 수 있도록 사제를 보내주었다. 이렇게 개종하고 세례를 받은 성 알렉산데르와 성 펠리치아노(Felicianus)와 성 론지노(Longinus)는 황제의 분노를 샀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우상 숭배를 거부해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다시 감옥에 갇혔던 성 빅토르는 며칠 뒤 유피테르(Jupiter) 신상 앞에 제사를 바치도록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우상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황제는 그를 맷돌에 넣어 짓이기도록 했으나 오히려 맷돌이 깨지는 기적이 일어나 결국 참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앞서 순교한 세 명의 경비병들과 성 빅토르의 시신은 바다에 버려졌으나 다른 신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나중에 마을 묘지가 될 절벽에 동굴을 파서 안장하였다. 그 후 그의 무덤은 프랑스 지방에서도 가장 붐비는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다. 5세기 초 동방에서 온 성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 7월 23일)는 마르세유에 정착해 두 개의 수도원을 세우고 이집트 수도승들의 생활과 정신 그리고 영성을 전달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성 빅토르와 동료 순교자들 무덤 위에 건립된 성 빅토르 수도원(Abbey of Saint-Victor)이다. 성 빅토르는 빅토리우스(Victorius)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1일 목록에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마르세유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던 성 빅토르가 군 복무와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갇힌 뒤 천사의 방문을 받았고, 그 후 여러 방법으로 고통을 당한 후 마침내 맷돌에 갈려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아울러 그와 함께 순교한 세 명의 군인으로 성 알렉산데르와 성 펠리치아노와 성 론지노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마르세유에서 성 빅토르 순교자를 기념한다고 짧게 기록하며 다른 세 명의 동료 순교자에 대해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순교 시기를 292년경으로 보았다. 그는 교회 미술에서 순교와 관련해서 맷돌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고, 제분업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