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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5월 30일 (금)부활 제6주간 금요일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마우로 스콧 (Maurus Scott)
    같은이름 굴리엘모 , 마우러스 , 마우루스 , 빌리암 , 빌헬름 , 스캇 , 스코트 , 윌리암 , 윌리엄
    축일 5월 30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79?-1612년

       복자 마우루스 스콧(또는 마우로 스콧)은 1579년경 영국 잉글랜드 동부 에식스(Essex)의 치그웰(Chigwell)에서 태어나 윌리엄 스콧(William Scott)이란 이름으로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런던(London)의 학교에서 수학한 후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와 트리니티 홀(Trinity Hall)에서 공부했는데, 특히 민법 분야에 관심과 재능이 탁월했다. 그는 1600년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런던으로 가서 이너 템플(Inner Temple) 법학원에서 변호사 수습 과정을 거쳤다. 이때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거짓이고 반역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는 가톨릭 신자인 친구를 만나 대화하면서 우연히 신학 서적을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2년 정도 많은 가톨릭 문학 및 영성 서적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다가 결국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의 개종에 있어서 성 베네딕토회 수도승으로 당시 런던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성 요한 로버츠(Joannes Roberts, 12월 10일) 신부의 영향이 컸다. 성 요한 로버츠는 복자 윌리엄 스콧을 가톨릭교회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성 베네딕토회의 지원자로도 받아들였다. 1604년 사순시기에 복자 윌리엄 스콧과 다른 세 명의 지원자는 성 요한 로버츠 신부와 함께 수도 생활을 위해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Valladolid)를 향해 출항하다가 체포되었다. 다행히 그들은 바로 풀려났고, 복자 윌리엄 스콧과 지원자들은 다른 베네딕토회 수도승의 인도로 사아군(Sahagun)의 성 파쿤도(Facundus) 수도원으로 가서 수련기를 시작했다. 복자 윌리엄 스콧은 성 베네딕토회에서 마우로라는 수도명을 받고 1610년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되자마자 영국 선교를 간절히 원한 그의 청원이 받아들여져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성 그레고리오 수도원으로 가서 선교 여행을 준비한 복자 마우로 스콧은 그해 12월 잉글랜드에 도착했다.

       복자 마우로 스콧은 런던으로 들어가는 길에 자신을 가톨릭 신앙과 성 베네딕토회로 이끌어준 성 요한 로버츠 신부를 보았는데, 이때 그는 가톨릭 사제로서 미사와 성사를 집전한 죄로 체포되어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다음날 타이번(Tyburn)에서 성 요한 로버츠 신부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처형이 끝난 후 복자 마우로 스콧은 순교자의 유해를 보존하기 위해 기회를 보다가 몇몇 사람과 함께 순교자의 유해를 최대한 찾아 모셨으나 그 과정에서 그는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1611년 12월까지 1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가 사부아(Savoie)의 대사가 감옥에 갇힌 가톨릭 사제들을 풀어주기 위해 협상에 나서면서 국외로 추방되었다. 두에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잉글랜드로 되돌아가길 원했고, 1612년 주님 부활 대축일 즈음에 배를 타고 들어왔으나 런던에 발을 딛기도 전에 템스강(Thames R.)에서 체포되었다.

       복자 마우로 스콧은 체포된 후 성공회의 주교에게 심문을 받고 제임스 1세(James I) 왕에게 충성을 서약하도록 제안을 받았지만, 그 서약이 교황과 가톨릭교회에 불충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1612년 5월 28일,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중앙 형사 법원인 올드 베일리(Old Bailey)에서 재판을 받고 가톨릭 사제라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무릎을 꿇고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5월 30일 아침에 교구 사제인 복자 리카르도 뉴포트(Richardus Newport) 신부와 함께 타이번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사형 집행인에게 몇 개 남은 금화를 선의로 건네며 자신을 처형하는 행위에 대해 기꺼이 용서한다고 말했다.

       복자 마우로 스콧 신부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5월 30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마우로 스콧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30일 목록에서 영국 런던에서 성 베네딕토회의 복자 마우로 스콧 신부와 교구 사제인 복자 리카르도 뉴포트가 제임스 1세 치하에서 가톨릭 사제라는 이유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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