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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7월 26일 (토)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윌리엄 웹스터 (William Webster)
    같은이름 굴리엘모 , 빌리암 , 빌헬름 , 와드 , 워드 , 윌리암
    축일 7월 26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60?-1641년

       윌리엄 워드(William Ward)로 잘 알려진 복자 윌리엄 웹스터는 1560년경 잉글랜드 북서부 웨스트모얼랜드(Westmoreland)의 손비(Thornby)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사제직을 준비하고자 1604년 9월 프랑스 북부 두에(Douai)로 가서 영국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1605년 12월 16일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고, 1608년 5월 31일 부제품을 받고 이어 다음날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14일 영국 선교를 위해 잉글랜드로 출발했는데, 풍랑이 일어 스코틀랜드 해안가에 상륙했다가 체포되어 감옥에서 3년을 보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는 잉글랜드로 가서 30년 동안 사목했는데, 그중에서 20년은 이곳저곳 감옥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열정적인 성품을 지니고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엄격했지만, 고해 성사를 듣는데 헌신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참회의 길로 이끌었다.

       1641년 4월 7일 영국 의회는 사형선고를 받은 모든 가톨릭 사제들을 추방하는 법률을 선포했다. 복자 윌리엄 웹스터 신부는 런던을 떠나기를 거절하고 조카 집에 머물다가 7월 15일 체포되었다. 그는 곧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중앙 형사 법원인 올드 베일리(Old Bailey)에서 재판을 받고 7월 23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7월 26일 특별히 그가 공경했던 성녀 안나(Anna) 축일에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찰스 1세(Charles I) 왕의 통치 중에 순교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예수님,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라는 애절한 기도였다.

       복자 윌리엄 웹스터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7월 26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윌리엄 웹스터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6일 목록에서 영국 런던에서 복자 윌리엄 웹스터 사제가 20년 넘게 여러 감옥에서 갇혔으면서도 사제 직무를 수행하다가 의회 명령으로 체포되어 찰스 1세 왕 때 타이번으로 끌려가 교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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