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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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유스토 (Justus)
같은이름 유스또 , 유스뚜스 , 유스투스 축일 9월 2일 신분 주교 , 은수자 활동지역 리옹(Lyon) 활동연도 +381년 이후
성 유스투스(또는 유스토)는 4세기 초반 프랑스 론강(Rhone R.) 유역 투르농(Tournon)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비엔(Vienne)의 주교에게 가르침을 받고 부제가 되었는데, 350년 이후 어느 날 리옹 시민들에 의해 그 도시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374년 발랑스(Valence) 시노드에 참석하여 갈리아 지역 성직자와 신자들의 종교 규율에 관해 논의했고, 381년에는 이탈리아 북부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열린 시노드에 참석하여 밀라노(Milano)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를 도와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과 쟁론을 벌였다. 그는 그 당시 성 암브로시오와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성경에 관한 논의를 담은 성 암브로시오의 편지 두 통이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그가 상당한 학식을 지녔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퀼레이아 시노드가 끝나고 얼마 후 정신 장애를 지닌 어떤 사람이 리옹 거리에서 난폭하게 칼을 휘둘러 여러 사람을 해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죄인들의 성역으로 인정된 대성당으로 피신했고, 성 유스토는 분노한 군중이 성당에 불을 지르겠다는 위협 속에서 그 사람을 정식 법정에 세우겠다는 약속을 받고 치안 판사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성당 밖으로 나오자마자 성난 군중은 경비병을 제압하고 그를 붙잡아 무참히 죽여버렸다. 성 유스토는 주교로서 비록 죄인이지만 성당으로 피신 온 이를 적절히 보호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더는 교구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주교직을 사임하고 비밀리에 참회의 생활을 실천하고자 이집트의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때 주교좌성당의 독서자였던 성 비아토르(Viator, 10월 21일)가 그를 따라 동행하였다. 그들은 스케티스(Scetis)의 어느 수도원에 들어가 수년 동안 평범한 수도자로서 은수 생활에 전념하였다.
우연히 성 유스토의 은신처를 발견하고 그를 알아본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리옹 사람들이 그들의 주교를 모셔오고자 사람들을 보냈으나 한사코 돌아가기를 거부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성 유스토 주교가 선종한 뒤에야 그의 유해를 성 비아토르의 유해와 함께 리옹으로 이장해 모실 수 있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2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전하며, 성 비아토르와 함께 이집트 사막에 은거해 몇 년 동안 천사와 같은 삶을 살았던 성 유스토가 10월 14일 선종하여 주님께로 돌아갔고, 그와 성 비아토르의 유해가 9월 2일 리옹으로 옮겨졌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9월 2일 목록에서 주교직을 떠난 성 유스토가 이집트에 은거해 수년간 수도자들과 함께 겸손한 삶을 살았고, 선종 후 그의 유해가 성 비아토르의 유해와 함께 리옹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한편 리옹 교구에서는 예전에 그에 관한 기념일을 1년에 네 번 지냈는데, 7월 14일은 서품 기념일로, 8월 4일은 그의 유해를 리옹으로 이장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9월 2일은 선종한 날로, 10월 14일은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간 날로 기념하였다.♣
- 성 유스토 (Jus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