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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6일 (금)사순 제2주간 금요일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가톨릭 성인/축일
    성 율리아노 (Julian)
    같은이름 율리아누스 , 줄리안 , 줄리앙 , 줄리언
    축일 3월 6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톨레도(Toledo)
    활동연도 +690년

       성 율리아누스(또는 율리아노)는 아마도 642년경 에스파냐 톨레도의 유대계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듯하다. 그는 톨레도 대성당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의 스승은 미래에 톨레도의 대주교가 되는 성 에우제니오(Eugenius, 11월 13일)였다. 그는 처음에 수도 생활에 더 큰 매력을 느꼈지만 학업을 계속해 교구 사제가 되었다. 타고난 인격과 뛰어난 학식과 재능으로 인해 그는 교구 내에서 중요한 일들은 맡아 수행했고, 680년 톨레도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주교로 재직하는 동안 4차례의 톨레도 공의회에 참석했으며, 마지막 3차례의 공의회를 직접 소집하고 주재하였다. 성 율리아노는 풍부한 학식을 통해 많은 글을 쓴 다작 작가로서 신학, 문학, 전례 등 다양한 작품을 저술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이베리아반도 전체에 대한 수장권을 행사한 주교로서 에스파냐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중세 에스파냐 교회의 공적인 전례의 전형이었던 모자라빅 전례(Mozarabic Rite)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성 율리아노는 690년 3월 6일 톨레도 교구의 주교관에서 평화로이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톨레도의 산타 레오카디아(Santa Leocadia) 성당에 묻혔는데, 8세기 후반 아브드 알라흐만 1세(Abd al-Rahman I)의 박해로 인해 그와 선임자들의 유물을 에스파냐 북서부의 오비에도(Oviedo) 지역으로 옮겼다. 오비에도 대성당의 보물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카마라 산타’(Camara Santa, 거룩한 방)에는 성 율리아노의 유물함도 보존되어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8일 목록에서 성덕과 학식으로 유명한 에스파냐 톨레도의 주교이자 ‘복자’인 율리아노에 대해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선종한 날로 알려진 3월 6일로 옮겨 톨레도에서 세 차례의 공의회를 소집한 성 율리아노 주교가 그의 저서에서 올바른 교리를 설명하고 정의와 자선, 영혼에 대한 헌신에서 모범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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