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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5월 19일 (월)부활 제5주간 월요일(교육 주간)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이보 (Ivo)
    같은이름 에르완 , 이브 , 헬로리 , 아이브스
    축일 5월 19일
    신분 신부 , 증거자 , 법률가
    활동지역 케르마르탱(Kermartin)
    활동연도 1253-1303년

       성 이보는 1253년 10월 17일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케르마르탱에서 그곳의 영주인 아버지 헬로리(Helory)와 귀족 출신의 어머니 아조(Azo)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신심 깊은 부모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는 1267년에 파리(Paris)로 가서 민법을 공부하고, 이어 1277년에 교회법을 공부하기 위해 오를레앙(Orleans)으로 갔다. 유학 생활 중에 성 이보는 늘 ‘성인이 되라’고 가르치셨던 어머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절제하는 생활을 하며 면학과 기도 생활에 전념했다. 그리고 쉬는 날이면 자주 병원을 방문해 병자들을 돌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브르타뉴로 돌아온 그는 렌(Rennes)과 트레기에(Treguier)의 교회법원과 사회법원의 판사로 임명되었다. 늘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자 애썼던 성 이보는 특별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보호하고 그들에게 공평한 판결과 기회를 주고자 힘썼다. 그는 관행처럼 주어지던 선물과 뇌물을 거부하고, 가난한 이들이 부탁한 사건은 무료로 처리할 뿐 아니라 필요한 비용까지도 스스로 부담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이들의 보호자요 변호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학과 성경과 공부한 성 이보는 1284년에 사제품을 받고 트레기에 주교의 비서로 불림을 받아 열정적으로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며 왕의 부당한 세금 부과에 항의하며 국가로부터 교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이즈음에 그가 작은 형제회의 제3회에 입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듬해에 그는 트레드레즈(Tredrez)의 작은 본당으로 발령받아 8년 동안 사목한 후 다시 루아넥(Louannec)의 본당으로 가서 선종할 때까지 사목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본당 사목을 하면서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가난한 이들의 권익을 돕는데 힘썼고, 루아넥에는 구호소를 세워 병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설교 능력 또한 비범했던 성 이보는 일생 엄격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가 1303년 5월 19일 주님 승천 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을 마친 후 선종하였다. 그는 1347년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법률가와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이보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은 돈을 상징하는 지갑이나 그들의 탄원이 적힌 두루마리나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또한 성직자의 옷보다는 주로 학자나 판사의 모자를 쓴 모습으로 주로 등장하고,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5월 19일 목록에서 차별 없이 정의를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아와 과부,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한 성 이보 신부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는 이브(I/Yves), 이보(Yvo) 또는 이보 헬로리(Ivo Helory)로도 불리는데, 브르타뉴에서는 에르완 헬로리(Erwan Helouri)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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