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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2월 1일 (일)연중 제4주일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시기베르토 3세 (Sigebert III)
    같은이름 시게베르트 , 시그베르트 , 시기베르투스 , 시기베르트 , 시제베르토 , 시제베르투스 , 시제베르트 , 지게베르트 , 지그베르트
    축일 2월 1일
    신분
    활동지역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활동연도 +656년

       성 시기베르투스 3세(Sigibertus III, 또는 시기베르토 3세)는 630년경 프랑크 왕국의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다고베르트 1세 왕은 자신의 부도덕한 생활을 비판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성 아만도(Amandus, 2월 6일) 주교를 추방했었는데, 아들이 태어나면서 방탕한 생활 태도를 바꾸고 하느님께 의지하며 가장 거룩한 사람에게 아들이 세례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자신이 추방한 성 아만도 주교를 소환하여 성 시기베르토 3세에게 세례를 주도록 했다. 성 아만도 주교는 오를레앙(Orleans)에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다고베르트 1세는 프랑크 왕국 전체를 통치했으나 중앙집권적 권력에 반대하는 귀족들과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34년에 4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을 부왕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아들의 교육을 선대 왕인 클로타르 2세(Chlothar II) 치하에서 오랫동안 왕국의 살림을 책임지는 궁전장(宮殿長)이었던 란덴(Landen)의 복자 페핀(Pepin the Elder 또는 Pepin I, 2월 21일)에게 맡겼다. 복자 페핀은 성 시기베르토 3세를 아키텐(Aquitaine)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데려가 교육하였다.

       639년 다고베르트 1세 왕은 임종하면서 복자 페핀에게 성 시기베르토 3세의 보좌를 부탁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복자 페핀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그리모알드(Grimoald the Elder)가 궁전장을 이어받았다. 성 시기베르토 3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리모알드를 무척 신임했고, 그러면서 프랑크 왕국의 북동쪽 지역을 지배하던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왕국에서 궁전장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성 시기베르토 3세는 재임 초기에 튀링겐 공국(Duchy of Thuringia)과의 전쟁을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키며 자선 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인물로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매일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의 구제사업과 수도원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는 모두 12개의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656년 2월 1일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암살당해 숨을 거둔 후 자신이 세운 메스(Metz)의 성 마르티노(Saint-Martin) 수도원 성당에 묻혔다.

       1063년 수도원 지하 묘지가 무너지면서 그의 유해가 드러났고 성인으로 공경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6세기 중엽 수도원이 철거되면서 1603년에 그의 유해를 낭시(Nancy) 대성당으로 이장하여 안치하였다. 그러면서 낭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때 그의 일부 유해가 소각되고 훼손되었지만, 나머지는 1803년 새로운 성해함에 모셔 보존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1일 목록에서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메스와 스타블로(Stavelot)와 말메디(Malmedy) 등지에 여러 수도원을 건립하고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자선을 베푼 성 시기베르토 3세 왕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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