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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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체올프리도 (Ceolfrith)
같은이름 체올프리두스 , 체올프리드 , 케올프리도 , 케올프리두스 , 케올프리드 , 체올프리스 , 세올프리스 축일 9월 25일 신분 신부 , 수도원장 활동지역 웨어머스(Wearmouth) 활동연도 642?-716년
성 케올프리두스(Ceolfridus, 또는 체올프리도)는 642년경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수도 생활과 밀접한 가족 친지들 속에서 성장한 그는 18살 무렵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에 있는 길링(Gilling)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의 삶을 시작했다. 664년에 전염병이 발생하기까지 4년 정도 길링에서 보낸 그는 요크의 성 빌프리도(Wilfridus, 4월 24일)가 원장으로 있는 리펀(Ripon) 수도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더 엄격한 규칙 속에서 독서와 노동에 헌신하다가 27살에 성 빌프리도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리펀 수도원의 수련장 직분을 맡아 성실히 수행하였다. 그즈음 웨어머스에 성 베드로(Petrus) 수도원을 세운 성 베네딕토 비스콥(Benedictus Biscop, 1월 12일) 대수도원장은 성 체올프리도의 높은 학식과 성덕에 대한 명성을 듣고 자신과 함께하기를 청했다. 그는 웨어머스로 가서 성 베네딕토 비스콥을 도와 생활하며 수도원장이 장기간 로마로 여행을 떠났을 때 공동체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지나친 엄격함이 다른 수도승들의 심한 반발을 사 다시 리펀 수도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후 성 베네딕토 비스콥의 설득으로 다시 웨어머스로 돌아온 성 체올프리도는 678년경 성 베네딕토 비스콥의 다섯 번째 로마 여행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성 베네딕토 비스콥이 웨어머스 인근 재로우(Jarrow)에 새로 설립해 685년에 봉헌한 성 바오로(Paulus) 수도원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흑사병이 재로우 전역을 휩쓸었을 때 그와 한 젊은 학생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690년경 1월 12일에 성 베네딕토 비스콥이 선종할 무렵 그는 대수도원장으로서 수도원과 왕에게 하사받은 넓은 땅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웨어머스와 재로우의 수도원을 돌보며 그곳을 교육과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는 로마를 여행하며 전임자처럼 도서관을 풍요롭게 할 많은 도서를 구해왔다. 그러면서 필사와 연구를 통해 이곳 수도원이 성경 연구의 중심지가 되도록 만들었다.
716년 그는 고령과 질병을 이유로 스스로 수도원장직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을 사도들의 도시인 로마에서 맞이하고픈 강한 열망을 느꼈다. 하지만 다른 수도승들은 그의 건강 상태가 장거리 여행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 강력히 반대했지만 결국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600여 명의 수도승과 함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그는 타인강(Tyne R.)으로 가서 배에 올라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로마를 향해 갈리아 지방을 이동하던 중 그해 9월 25일 프랑스 북동부 지방 랑그르(Langres) 근처에서 열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서는 ‘영국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베다 존자(Beda Venerabilis, 5월 25일) 사제 학자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영국 교회에서 오래전부터 성인으로 공경받으며 9월 25일(또는 29일)에 기념해 왔지만,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 그의 이름이 오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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