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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24일 (수)연중 제25주간 수요일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달마시오 모네르 (Dalmatius Moner)
    같은이름 달마시우스 , 달마씨오 , 달마씨우스 , 달마우 , 달마티오 , 달마티우스
    축일 9월 24일
    신분 신부
    활동연도 1291-1341년

       복자 달마티우스 모네르(또는 달마시오 모네르)는 1291년 오늘날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 지방에 있었던 아라곤(Aragon) 왕국의 헤로나(Girona) 근처 산타 콜로마 데 파르네르스(Santa Coloma de Farners)에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헤로나에서 공부한 후 17살 무렵에 프랑스 남부 해안가에 있는 몽펠리에(Montpellier) 대학교로 가서 수학했다. 그는 이곳에서 한때 무절제한 생활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고, 학업을 마친 후 헤로나에 돌아왔다. 그는 1314년 23살의 나이로 헤로나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설교자회, Ordo Fratrum Praedicatorum, O.P.)에 입회하였다. 신학 공부를 마친 후 그는 종신 서약과 사제품을 받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수도원의 일상적인 임무를 수행하여 지냈다.

       그는 오랫동안 헤로나의 스투디움 제네랄레(Studium generale)에서 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쳤고 잠시 수련장의 직책도 맡게 되었다. 그는 수도 규칙을 설명할 때마다 자발적인 금욕과 고행을 역설했고, 금주는 물론 의자에서 그냥 잠을 자는 등 자신이 먼저 수많은 고행을 자발적으로 실천했다. 그는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최상이라 여겨 밖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번은 복자 달마시오 모네르가 사라져서 다른 형제들이 그를 찾고 보니 깊은 탈혼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 안에서 ‘천사와 대화하는 형제’로 불렸다. 그는 가능한 모든 직함과 직책을 사양했지만, 누구보다 수도 규칙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복자 달마시오 모네르는 자신의 마지막 날을 마르세유(Marseille) 인근 알프스 산중에 있는 생막시맹라생트봄(Saint-Maximin-la-Sainte-Baume)에서 보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곳에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호 성녀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가 30년 동안 지낸 동굴이 있는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공동 기도와 미사에 참여할 때를 빼곤 동굴을 나가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고독 속에서 3년을 보냈다. 1337년 그는 수도원의 부름을 받고 헤로나로 돌아와 여생을 수도원에서 보내다가 1341년 9월 24일 선종해 그곳에 묻혔다. 교황 인노첸시오 13세(Innocentius XIII)는 1721년 8월 13일에 그에 대한 대중적 신심을 확인하고 그를 복자로 선포하였다. 수도원에 묻혔던 그의 유해는 1835년 수도원이 국가에 의해 몰수되면서 헤로나 주교좌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그리고 1951년에 다시 헤로나로 돌아온 도미니코 수도회는 예수 성심 성당을 인수해 제단 아래 그의 유해함을 안치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4일 목록에 에스파냐 카탈루냐의 헤로나에 설교자회의 사제이자 고독과 침묵을 사랑한 복자 달마시오 모네르가 있었다며 그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그는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복자 달마우 모네르(Dalmau Moner)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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