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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0월 20일 (월)연중 제29주간 월요일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가톨릭 성인/축일
    성 카프라시오 (Caprasius)
    같은이름 가프라시오 , 가프라시우스 , 까쁘라시오 , 까쁘라시우스 , 카프라시우스 , 카프라이스
    축일 10월 20일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아쟁(Agen)
    활동연도 +303년경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 지방 아쟁의 전승에 따르면 성 카프라시우스(또는 카프라시오)는 그 도시의 초대 주교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의 주장으로 그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불확실하다. 다만 6세기에 아쟁에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었고, 나중에 그 자리에 오늘날의 아쟁 주교좌성당(Cathedrale Saint-Caprais d’Agen)이 세워졌다. 전설적인 순교록에 따르면 성 카프라시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주교직에서 물러나 은수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 당시 공동 황제인 막시미아누스(286~305년 재위)가 보낸 다키아누스(Dacianus) 총독이 몽생뱅상(Mont-Saint-Vincent) 근처에서 본격적인 박해를 시작하자 신자들과 함께 아쟁으로 피신해 언덕 위의 한 동굴에 숨었다. 그곳에서 그는 아쟁의 어린 소녀인 성녀 피데스(Fides, 10월 6일)가 벌겋게 달군 놋쇠 위에서 고문을 받다가 장렬하게 순교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녀의 용기와 믿음에 크게 감동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몇몇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위대한 섭리를 깨달은 성 카프라시오는 성녀 피데스의 시신이 방치된 곳으로 가서 총독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묻는 총독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며 더욱이 주교라는 사실을 용감하게 말하였다. 다키아누스 총독은 그의 인품에 크게 감명을 받았지만, 황제의 칙령에 따라 신앙을 버리고 배교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성 카프라시오가 단호히 거부하자 형리들에게 인계했고, 형리들도 그의 깊은 신앙과 인내에 감명받아 더는 괴롭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성녀 피데스의 자매인 성녀 알베르타(Alberta, 10월 6일)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녀 피데스와 함께 공경을 받게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0일 목록에서 박해를 피해 동굴에 몸을 숨겼던 성 카프라시오가 성녀 피데스의 순교를 통해 용기를 내고 용감하게 투쟁하여 순교의 영예를 안았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프랑스 아키텐 지방 아쟁에서 성 카프라시오가 순교했다고 짧게 기록하였다. 둘 다 성 카프라시오가 주교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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