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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2월 18일 (수)재의 수요일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타라시오 (Tarasius)
    같은이름 따라시오 , 따라시우스 , 타라시우스
    축일 2월 18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806년

       성 타라시우스(Tharasius, 또는 타라시오)는 730년경 콘스탄티노플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해 비잔틴 제국의 궁정에서 고위 관리가 되었다. 그는 레오 4세 황제(775~780년 재위)의 미망인이자 아직 어린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6세(780~797년 재위)의 섭정이었던 이레네(Irene of Athens) 황후의 비서로 활약하던 평신도였다. 그는 화려한 궁정에서 오만과 사치에 빠지지 않고 마치 수도승처럼 살았다. 이레네 황후는 교활하고 잔인한 권력자였지만 성화상 공경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성화상 파괴를 지지하던 콘스탄티노플의 바오로 4세 총대주교가 784년에 사임하자 이레네 황후는 평신도였던 성 타라시오를 새로운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새로운 공의회를 소집한다는 조건으로 임명을 수락하고 784년 12월 25일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리고 785년 초에 교황 하드리아노 1세(Hadrianus I)의 임명을 받고 성화상 공경을 지지하는 견해를 밝힌 후 교황에게 새로운 보편 공의회 개최를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그는 성화상 공경을 금지했던 제5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을 개정하고, 786년에 제2차 니케아(Nicaea,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에 있는 이즈니크[Iznik]) 공의회를 소집하여 이듬해까지 이어진 회의를 통해 성화상 공경을 허용하는 새로운 결정을 끌어냈다. 공의회의 교부들은 성화상 파괴주의를 비판하고 성화상 공경을 옹호하면서 오직 하느님께만 드리는 ‘흠숭’([그] Latreia, [라] Latria)과 창조된 사물에까지 확장할 수 있는 ‘공경’([그] Proskynesis, [라] Adoratio)을 분명히 구분하였다. 성 타라시오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서 성상 및 성화 파괴론자에 의한 박해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화상 공경을 장려하며 신심을 부흥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는 엄격한 금욕생활을 실천하면서 당시 악습이었던 성직매매를 엄격히 규제하였다. 만년에 그는 병으로 거의 움직일 수 없었으나 미사만큼은 꼭 봉헌하다가 806년 2월 25일 선종하여 자신이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에 지은 수도원에 묻혔다. 그는 21년 동안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서 봉사하여 교회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큰 기둥이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25일 목록에서 높은 학식과 투철한 신앙을 지닌 콘스탄티노플의 성 타라시오 주교가 교황 하드리아노 1세에게 성화상 공경을 옹호하는 서신을 보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18일로 그의 기념을 옮겨 신앙과 교리로 유명했던 콘스탄티노플의 성 타라시오 주교가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교부들과 함께 성화상 공경을 옹호했다고 기록하였다. 동방 정교회에는 그가 선종한 날인 2월 25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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