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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8일 (일)사순 제3주일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가톨릭 성인/축일
    성 테오필락토 (Theophylact)
    같은이름 떼오필로 , 떼오필루스 , 테오필락또 , 테오필락뚜스 , 테오필락투스 , 테오필락트 , 테오필로 , 테오필루스
    축일 3월 8일
    신분 주교 , 증거자
    활동지역 니코메디아(Nicomedia)
    활동연도 +840년경

       성 테오필락투스(Theophilactus, 또는 테오필락토)는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온 소년으로 나중에 그 도시의 총대주교가 될 성 타라시오(Tarasius, 2월 18일)의 총애를 받으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학업을 마칠 즈음 성 테오필락토는 수도 성소를 강하게 느끼고 염원했기에 성 타라시오는 그와 또 다른 제자인 성 미카엘(Michael, 5월 23일)을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 근처에 있는 수도원으로 보냈다. 그렇게 수도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나중에 모두 주교가 되었는데, 성 테오필락토는 니코메디아(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역의 이즈미트[Izmit]), 성 미카엘은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지방 신나다(Synnada)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성 테오필락토는 정통 교리를 수호했을 뿐만 아니라 예언의 은혜가 뛰어났으며, 가난한 이와 과부 그리고 고아와 부랑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표시했고 또 이들을 위한 구호소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815년경 아르메니아인 레오 5세 황제(813~820년 재위)가 제국 내에서 다시금 성상 파괴 정책을 재개하자 성 테오필락토는 이를 격렬히 반대하며 반박하였다. 그러자 황제는 그를 카리아(Caria)의 스트로빌루스(Strobilus) 요새로 추방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 테오필락토는 그곳에서 거의 30년을 감금되었다가 840년경 숨을 거두었다. 나중에 동방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하는 테오도라(Theodora, 2월 11일) 황후가 섭정하면서 성화상 공경을 반대한 이전의 모든 칙령을 폐기하고 성화상 공경을 회복한 후 그의 유해가 니코메디아로 이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7일 목록에서 니코메디아의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 또는 테오필로) 주교가 성화상 공경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해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8일로 기념일을 옮겨 성화상 공경 때문에 추방당한 성 테오필락토 주교가 카리아의 스트로빌루스에서 사망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테오필락토는 성 테오필로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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