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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1월 5일 (월)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데오그라시아 (Deogratias)
    같은이름 데오그라시아스 , 데오그라씨아스 , 데오그라티아스
    축일 1월 5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카르타고(Carthago)
    활동연도 +457/458년

       성 데오그라티아스(또는 데오그라시아)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오늘날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Tunis] 일대에 있었던 고대 도시)의 사제였다. 439년에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신봉하는 반달족의 가이세리크(Gaiseric, 428~477년 재위) 왕이 카르타고를 점령한 후 정통 교리를 옹호하는 가톨릭교회의 쿠오드불데우스(Quodvultdeus) 주교와 사제들을 모두 추방하였다. 박해자들이 주교와 사제 대부분을 물이 새는 낡은 배에 태운 후 바다로 떠나보냈는데, 다행히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해안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14년 동안 카르타고에는 주교좌가 공석으로 남았는데, 로마 제국의 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425~455년 재위)의 요청에 따라 가이세리크 왕이 새 주교 임명을 허락하였다. 그래서 454년에 성 데오그라시아 사제가 카르타고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성 데오그라시아 주교는 굳은 신앙과 가르침 그리고 모범적 생활을 통해 백성들의 신앙을 일깨우기 시작했고, 이방인은 물론 아리우스파 사람들조차 존경할 정도로 그의 선교 활동은 크게 성공하였다. 455년에 가이세리크 왕이 로마(Roma)를 습격해 약탈하면서 수많은 포로를 아프리카로 끌고 왔다. 성 데오그라시아는 반달족과 무어인 사이에서 그리고 모든 가족관계가 끊어진 암담한 상태에서 노예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 포로들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그리스도인 노예를 속량하기 위해 성당의 모든 보물을 포함해 그가 팔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팔아 대속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카르타고에서 가장 큰 성당 두 곳에 침구를 준비해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였다. 노예에서 해방된 이들이 자립하도록 돕고, 매일 병자들을 방문해 위로하며 헌신하던 성 데오그라시아 주교는 계획했던 사업을 채 끝내기도 전인 457년 또는 458년에 선종하였다. 그는 불과 3년 정도의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카르타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그들로부터 큰 공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선종 이후 카르타고 주교좌는 다시 23년 정도 공석으로 남았다가 480년경 성 에우제니오(Eugenius, 7월 13일)가 그 뒤를 이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22일 목록에서 카르타고의 주교인 성 데오그라시아가 로마에서 카르타고로 잡혀 온 포로들을 대속하다가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렸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고대 카르타고 전례력에서 기념하던 1월 5일로 옮겨 성 데오그라시아 주교가 반달족에 의해 로마에서 끌려온 많은 포로를 대속하고 카르타고의 대성당 두 곳에 침구를 준비해 그들을 모아 돌봤다고 기록하였다. 성 데오그라시아 주교의 삶에 대한 정보는 주로 아프리카 비타(Vita) 출신의 역사가이자 주교로서 아프리카에서 반달족 왕들에 의해 자행된 박해의 역사를 기록한 빅토르 비텐시스(Victor Vitensis, Victor of Vita)의 글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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