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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24일 (수)연중 제25주간 수요일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파치피코 (Pacificus)
    같은이름 빠치피꼬 , 빠치피꾸스 , 파치피쿠스 , 파키피코 , 파키피쿠스
    축일 9월 24일
    신분 신부
    활동지역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활동연도 1653-1721년

       성 파치피쿠스(또는 파치피코)는 1653년 3월 1일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 지방의 산 세베리노에서 안토니오 디비니(Antonio Divini)와 마리아 안젤라 브루니(Maria Angela Bruni)의 아들로 태어나 카를로 안토니오 디비니(Carlo Antonio Divini)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부모를 모두 잃고 당시 산 세베리노 대성당의 부제였던 엄격한 외삼촌에 의해 양육되었다. 외삼촌은 그를 마치 하인처럼 심하게 대했지만, 어린 성 파치피코는 그 모든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뎌냈다. 그는 17살이 된 1670년에 작은 형제회에 입회를 신청해 허락을 받고 포라노(Forano)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그해 12월 28일 수도복을 입고 파치피코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1678년 6월 4일 사제품을 받고 1680년부터 몬탈보도소(Montalboddosso)와 포솜브로네(Fossombrone)에서 젊은 수도자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더 활동적인 삶을 원했고, 장상의 허락을 받아 1683년부터 인근 마을이나 성당이 없는 곳을 골라 여행하며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설교하고 병자를 방문하며 고백을 듣고 젊은이들에게 선교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특히 그의 강론은 부드럽고 단순해서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그의 사도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684년부터 건강이 악화하더니 1688년에는 35살이라는 한창나이에 뜻하지 않게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었다. 게다가 다리에 생긴 상처로 인해 제대로 걷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결국 그는 더 이상의 활동적인 삶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오로지 기도와 보속, 참회와 자선에 전념하였다. 1705년 고향인 산 세베리노의 수도원으로 와서 여생을 보낸 그는 1721년 9월 24일 선종하여 수도원에 묻혔다.

       성 파치피코는 육신의 병고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초자연적인 은사를 주셨다. 그는 여러 차례 예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특히 사보이아(Savoia)가 튀르키예를 무찌르고 승리한다는 예언이 적중하여 큰 공경을 받았다. 그리고 미사 중에 자주 탈혼 상태에 빠졌는데 가끔 그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그는 1786년 8월 4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25일 목록에서 산 세베리노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작은 형제회의 사제로서 탁월한 인내와 고독에 대한 사랑으로 명성을 떨친 성 파치피코가 세상을 떠났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선종한 날인 9월 24일로 축일을 옮겨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 산 세베리노에 작은 형제회의 사제인 성 파치피코가 살았는데, 그는 회개와 고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성체 앞에서의 기도로 유명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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