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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녀 펠리치타 (Felicity)
    같은이름 펠리시티 , 펠리치따스 , 펠리치타스 , 펠리키따스 , 펠리키타스 , 필리서티
    축일 11월 23일
    신분 과부 ,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165년경

       성녀 펠리치타(Felicitas)는 로마 교회에서 오래전부터 공경해온 순교자이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그녀의 무덤 위에 건립된 대성당에서 그녀의 순교에 관한 축일 강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녀 펠리치타라는 이름 외에 그녀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사실은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이 11월 23일 목록에서 기록했듯이, 로마의 살라리아 누오바 길(Via Salaria nuova)에 있는 막시무스(Maximus) 카타콤바에 그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반면 옛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에서 일곱 아들의 어머니인 성녀 펠리치타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161~180년 재위)의 명령에 따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성녀 펠리치타와 그녀의 일곱 아들에 관한 전설은 이미 6세기에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의 강론에서 언급된 뒤부터 전해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녀 펠리치타는 세례를 받고 개종한 로마의 부유하고 경건한 부인으로 남편과 사별한 뒤에는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며 기도 생활과 자선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신앙의 열정으로 귀족 집안이던 자기 집 안에 있던 이교 신상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그러자 분노한 이교도의 사제들이 그녀를 당국에 고발하였다. 결국 성녀 펠리치타와 그녀의 일곱 아들은 황제의 명으로 총독 앞으로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를 받았다. 이때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나를 위협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영이 모든 고난을 이기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총독이 죄 없는 자녀들마저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그녀는 “만일 그들이 신자라면 영원히 살도록 힘쓸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불을 기다려야 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황제는 그들 형제를 네 명의 재판관에게 보내 각기 다른 형벌로 처형했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인 성녀 펠리치타가 순교의 월계관을 얻었다.

       한편 이들 형제는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이전까지 ‘일곱 명의 거룩한 형제’ 순교자로 불리며 7월 10일에 축일을 기념했었다. 하지만 이들 일곱 명의 순교자들과 성녀 펠리치타와의 연관성은 희박하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마카베오 하권 7장에 나오는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를 본떠서 인위적으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7월 18일에 기념하는 성녀 심포로사(Symphorosa)와 일곱 아들 또는 일곱 명의 동료 순교자들 이야기와도 유사성이 크다. 그래서 개정 “로마 순교록”은 7월 10일 목록에서 일곱 명의 거룩한 순교자들이 로마에 있는 네 개의 지하 묘지에 묻혀 있고, 로마 교회는 그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억하며 함께 기념한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즉 프리스킬라(Priscilla) 묘지에 성 펠릭스(Felix)와 성 필립보(Philippus), 조르다니(Giordani) 묘지에 성 비탈리스(Vitalis)와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와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막시무스(Maximus) 묘지에 성 실라노(Silanus), 프래텍스타투스(Praetextatus) 묘지에 성 야누아리오(Januarius)가 묻혀 있다고 한다. 그 외에 성녀 펠리치타와의 연관성이나 일곱 명의 형제 관계 등에 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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