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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6일 (금)사순 제2주간 금요일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가톨릭 성인/축일
    성 프리돌리노 (Fridolin)
    같은이름 프리돌리누스 , 프리돌린
    축일 3월 6일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제킹엔(Sackingen)
    활동연도 +8세기

       성 프리돌리누스(Fridolinus, 또는 프리돌리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나 수도 생활을 선택했다. 그는 고국에서 먼저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한곳에 머물지 않고 갈리아 지방으로 건너가 오늘날의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여행자’, ‘순회(방랑) 설교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이렇게 다니면서 폐허가 된 성당들을 발견하면 가슴 아파하며 직접 수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성 힐라리오(Hilarius, 1월 13일)의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프랑스의 푸아티에(Poitiers)로 갔다. 그런데 당시 푸아티에는 민족 대이동의 격변기에 반달족(Vandals)과 고트족(Goths)의 침략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고, 성 힐라리오의 유해를 모신 성당도 파괴된 상태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성 힐라리오의 환시를 보고 그의 유물을 찾아 새로운 무덤을 마련한 후 신자들과 함께 성 힐라리오 성당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507년 서고트족(Visigoths)과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성 힐라리오의 환시 덕분이라고 믿은 클로비스 1세(Clovis I, 509~511년 재위)가 그에게 성당 건축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 후에 성 프리돌리노는 새로운 환시를 보았는데, 꿈속에서 성 힐라리오가 그에게 라인강의 한 섬으로 가서 선교사로서 자신을 기리는 성당을 지으라고 했다. 그는 클로비스 1세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는 섬에 대한 소유권을 받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프랑크족이 5세기 말에 정복한 알레마니족(Alemanni族)의 땅으로 갔다. 그는 오늘날 프랑스 동부와 독일 남부 그리고 스위스 북부 지역에서 선교사로서 활발하게 설교하며 각 지역에 성 힐라리오에게 봉헌한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오랜 여행 끝에 바젤(Basel) 동쪽 라인강(Rhein R.)에 있는 제킹엔 섬에 도착해 비로소 꿈에서 보았던 섬을 찾았다. 그가 그곳에 수도원과 성당을 지으려고 했을 때, 이 섬을 가축 방목지를 사용하던 농부들이 그를 소도둑으로 오인해 쫓아내기도 했다. 성 프리돌리노는 클로비스 1세가 서명한 기증 문서를 보여줌으로써 농부들의 마음을 바꾸고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제킹엔 섬은 기도와 평화의 섬으로 변화했고, 제킹엔 수도원은 독일 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 되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성 프리돌리노의 친절함과 도움에 감동했고, 많은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맡겨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섬 안에 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근처에 수녀원도 지었다.

       그 뒤로도 성 프리돌리노는 선교 활동을 계속하면서 콘스탄츠(Konstanz)에 수도원을 세우고, 바이에른(Bayern) 지방의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까지 선교 지역을 확대하였다. 중세의 대표적 성인전인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의 “황금 전설”(Legenda Aurea) 부록에는 성 프리돌리노가 개종시킨 우르소(Urso)의 기적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 프리돌리노는 오늘날의 스위스 지역에서 선교하면서 그곳의 지주였던 우르소를 개종시켰다. 우르소는 죽으면서 자신의 광활한 땅(오늘날 스위스 동부의 글라루스주[Glarus州])을 기증했고, 성 프리돌리노는 그곳에도 성 힐라리오에게 봉헌한 성당을 여럿 지었다. 그런데 우르소의 동생인 란돌프(Landolf)가 기증받은 땅의 권리를 주장하며 그를 법정에 세웠다. 성 프리돌리노는 우르소의 무덤으로 가서 간절히 기도한 후 죽은 우르소를 다시 깨웠고, 썩어가던 우르소는 직접 법정에 나타나 동생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에 놀란 란돌프는 두려운 나머지 자기 몫의 땅까지 성 프리돌리노에게 모두 주었다고 한다.

       ‘알레마니족의 사도’로 기억되는 성 프리돌리노는 538년경 3월 6일, 오늘날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Baden-Wurttemberg州)의 바트 제킹엔(Bad Sackingen)에서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그런데 다른 자료에서는 그가 650년에 선종했다고 하고, 아일랜드 출신이기보다 푸아티에 인근 지역 출신일 가능성을 더 크게 보기도 한다. 옛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6일 목록에서 오늘날 스위스 영토에 있는 제킹엔에 본래 아일랜드 출신으로 프랑스를 순례하며 방랑하던 성 프리돌리노 수도원장이 성 힐라리오를 기리기 위해 두 개의 수도원을 세웠다고 하며 그의 선종 시기를 8세기로 기록하였다(그런데 제킹엔 수도원은 오늘날 독일 영토인 바트 제킹엔에 있다). 그의 선종 시기만큼 매장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9세기에 그의 유해가 제킹엔 대성당 성가대석 아래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뒤로도 그의 유해는 여러 번,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종종 기증 문서를 든 수도원장이나 순례자의 지팡이와 배낭을 든 방랑 수도자로 묘사된다. 또한 기적 이야기와 관련해 해골 모습의 우르소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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