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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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플라비아노 (Flavian)
같은이름 플라비아누스 , 플라비안 축일 7월 20일 신분 총대주교 , 증거자 활동지역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연도 +518년
성 엘리아(Elias)는 아랍인으로서 이집트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이단 주교인 티모테우스(Timotheus)로부터 정통 가톨릭이란 이유로 그 지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갔다가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의 은둔소에서 잠시 머물렀으며 예리코(Jericho)에 공동체를 세웠다. 여기서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494년에는 예루살렘(Jerusalem)의 주교가 되었다. 이 당시에 그는 시리아 수도자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를 만났다.
482년에 황제 제노는 가톨릭과 그리스도 단성설자 간의 논쟁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헤노티콘’(Henotikon)이란 칙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가 서방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단성설자를 단죄하는 결과가 나왔고, 동방 교회에서는 이단이 더욱 기세를 부리는 근원이 되어버렸다.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누스와 엘리아도 이 문서를 받아들이긴 하였으나 행동은 다소 애매하였다. 그러나 이 두 성인의 마음속에는 정통성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성설자들과 함께 황제를 지원하라는 명을 거절하고 유배를 당하였다. 성 플라비아누스는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로 유배를 갔고, 성 엘리아는 아일라(Aila)로 갔는데, 이 당시에 그의 친구인 성 사바(Sabas)가 그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 성 플라비아노 (Flav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