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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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헤르메네질도 (Hermenegild)
같은이름 헤르메네길도 , 헤르메네길두스 , 헤르메네길드 , 헤르메네길트 , 헤르메네질두스 , 헤르메네질드 축일 4월 13일 신분 왕자 , 순교자 활동연도 +585년
성 헤르메네길두스(Hermenegildus, 또는 헤르메네질도)는 6세기 중엽 에스파냐에서 서고트족(Visigoths)의 왕 레오비길두스(Leovigildus) 왕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이 낳은 두 명의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리우스파(Arianismus) 이단을 추종하던 서고트족은 에스파냐를 정복한 후 무력으로 아리우스파 교리를 전파했고, 레오비길두스 왕은 확고한 아리우스파 신봉자였다. 성 헤르메네질도와 그의 동생인 레카레두스(Reccaredus)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리우스파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레오비길두스 왕은 573년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그의 두 아들에게 왕국의 일부 지역을 통치하도록 했다. 그리고 579년에는 성 헤르메네질도와 프랑크족의 공주인 잉군드(Ingunde)와의 혼인을 주선하였다. 잉군드는 정통 교리를 따르는 가톨릭 신자이며 프랑크 왕국의 동부 지역인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를 다스리는 시제베르트(Sigebert) 왕의 딸로 열심한 가톨릭 신자였다. 레오비길두스 왕은 아리우스파를 신봉했으나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프랑크족과의 유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잉군드와의 혼인을 정치적으로 반겼다.
그런데 레오비길두스 왕은 첫 번째 부인이 사망한 후 이전의 왕인 아타나길두스(Athanagildus)의 미망인인 고스빈타(Goswintha)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광신적인 아리우스파 신봉자였다. 고스빈타는 잉군드에게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아리우스파로 개종하도록 강요했지만, 잉군드는 모진 학대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레오비길두스 왕은 궁정에서 종교적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고자 성 헤르메네질도와 잉군드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하고,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 세비야(Sevilla)를 수도로 하는 에스파냐 남부 지방의 통치를 맡겼다. 이 결정은 성 헤르메네질도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계모의 학대 속에서도 가톨릭 신앙에 충실한 아내의 모습에 감동했고, 578년경 세비야의 주교가 된 성 레안데르(Leander, 3월 13일)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스빈타와 레오비길두스 왕은 아들의 왕위를 박탈하고, 아리우스파 신앙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모든 재산과 아내 그리고 목숨까지 빼앗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성 헤르메네질도는 아버지의 제의를 완강히 거부하며 아리우스파 이단과의 투쟁을 선언하고 582년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여러 주요 도시로부터 왕으로 인정받았고, 성 레안데르 주교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olis)로 보내 비잔틴 제국의 군사적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584년 레오비길두스 왕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그의 왕국을 공격하고 세비야를 1년 내내 포위하였다. 성 헤르메네질도는 레오비길두스 왕에게 매수되어 그를 배신한 군인들을 피해 성당 안으로 피신했다. 레오비길두스는 백성들의 눈을 의식해 레카레두스를 보내 항복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성 헤르메네질도는 아버지의 발 앞에 엎드려 항복했지만, 가톨릭 신앙은 버릴 수 없다며 용서를 구했다. 레오비길두스는 차츰 아들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성 헤르메네질도와 화해하며 예전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하지만 고스빈타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왕위 후계자로 삼으려는 계략으로 레오비길두스 왕에게 아들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레오비길두스 왕은 아들의 왕관을 벗기고 바르셀로나(Barcelona) 남쪽 타라고나(Tarragona)의 감옥에 가뒀다. 성 헤르메네질도는 반역죄가 아닌 이단죄로 기소되어 배교를 강요당하며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감옥 안에서도 자발적인 고행을 실천하였다. 부활절이 다가오자 레오비길두스 왕은 아리우스파 주교를 감옥으로 보내어 그가 주는 성체를 받아 모시면 아들을 사면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성 헤르메네질도는 이를 거부했고, 분노한 왕은 병사들을 감옥으로 보내 그를 죽이도록 명령했다. 성 헤르메네질도는 585년 4월 13일 주님 부활 대축일 전야에 타라고나에서 군인들의 도끼에 참수되어 순교했고, 그의 시신은 세비야에 묻혔다. 586년 4월 레오비길두스 왕이 사망하고 레카레두스(586~601년 재위)가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형의 영웅적인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레카레두스 1세 왕은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했고, 아리우스파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고스빈타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성 헤르메네질도는 아리우스파 이단을 죽음으로 거부하여 정통 신앙을 지킨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게 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주로 예수회에 의해 장려되었고, 그의 순교 1,000주년을 맞아 1586년에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가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년 재위) 왕의 요청을 받아 에스파냐 전역에서 그의 축일을 기념하도록 허가하였다. 그 후 1636년에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는 그의 축일을 보편 교회 안에서 기념하도록 했다. 1969년 전례력 개정 후에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는 삭제되고 지역 전례력 등에서 기념하도록 변경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성 헤르메네질도는 왕관을 쓰고 왕실 문장이 새겨진 위엄 있는 복장을 하고 순교를 상징하는 도끼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13일 목록에서 에스파냐 세비야에서 아리우스파 서고트족의 왕 레오비길두스의 아들 성 헤르메네질도가 가톨릭 신앙을 고백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는데, 사악한 아버지의 명령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에 아리우스파 주교의 성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참수당해 지상의 왕국을 버리고 천상 왕국으로 옮겨가 왕이자 순교자로서 복된 자들의 거처에 들어갔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에스파냐 타라고나에서 순교한 성 헤르메네질도는 서고트족의 왕 레오비길두스의 아들로 아리우스파 이단 신봉자였으나 성 레안데르 주교의 도움으로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했고, 주님 부활 대축일에 아리우스파 주교의 성체를 거부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죄로 투옥되어 도끼로 처형당했다고 기록하였다.♣
- 성 헤르메네질도 (Hermeneg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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