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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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후고 (Hugh)
같은이름 위고 , 후꼬 , 휴스 축일 4월 1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그르노블(Grenoble) 활동연도 +1132년
성 후고(Hugo)는 1053년경 프랑스 남동부 도피네(Dauphine) 지방 발랑스(Valence) 근교의 샤토뇌프쉬르이제르(Chateauneuf-sur-Isere)에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존경받는 군인이자 훗날 카르투지오회 수도승이 된 오딜로(Odil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기도와 자선의 중요성을 배우고 어려서부터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발랑스 대성당 학교에서 교육받고 여러 곳에서 수학하며 신학적 재능을 인정받은 성 후고는 25살의 나이에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발랑스 주교좌성당 참사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079년 프랑스 남부를 순방한 교황 특사 후고 주교는 그의 성품과 학식에 깊은 인상을 받아 비서로 임명한 후 1080년 아비뇽(Avignon) 공의회에 함께 참석하였다.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은 성직매매와 고리대금업, 세속 권력의 간섭과 성직자들의 부도덕한 생활 등으로 얼룩진 그르노블 교구의 타락상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던 중 그르노블의 주교가 사망하자 후임자 임명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일어났고 평신도인 성 후고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평소 성직매매를 반대하는 주교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던 성 후고는 그르노블 성직자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주교직에 오르게 되었다. 교황 특사는 그를 설득해 사제품을 준 후 로마(Roma)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성 후고는 1080년 27살의 나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에게 직접 주교품을 받았다. 성 후고 주교가 그르노블에 도착해 본 교구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그는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주도면밀한 교구 개혁안을 수립하였다. 그는 성직매매와 고리대금업을 철저히 배격하고, 성직자의 규율과 사제 독신제를 확립하는 한편 텅 빈 교구 재정을 튼튼히 했다.
2년 후 교구 개혁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신자들의 신앙심도 고양되자 그는 주교직을 사임하고 클뤼니 수도회의 라 셰즈-디외(La Chaise-Dieu) 수도원으로 가서 베네딕토회 회원이 되어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의 도움이 간절했던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의 권고로 교구로 돌아와 주교 직무에 복귀하였다. 그는 카르투지오회(Ordo Cartusiensis)의 설립자인 성 브루노(Bruno, 10월 6일)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후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 후고는 랭스(Reims) 대성당 학교에서 공부할 때 성 브루노를 스승으로 만났었다. 1084년에 성 브루노가 6명의 동료와 함께 세속의 삶을 버리고 그르노블로 이주하여 적막한 알프스 산속에 은수처를 마련할 때 그르노블의 주교이자 제자였던 성 후고는 샤르트뢰즈(Chartreuse)라는 장소를 제공해주었다. 이곳은 해발 1,067m에 자리한 골짜기로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여 인적이 없는 곳으로 성 후고가 은수처로 이용했던 곳이었다. 성 브루노와 동료들은 이곳에 경당과 개인 은수처를 만들고 성 베네딕토(Benedictus)의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며 침묵 생활을 실천했는데, 이것이 카르투지오회의 시작이었다. 성 후고는 1085년에 성 브루노가 지은 경당을 축성하였다.
성 후고는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 수도자로서 은수 생활을 하고자 여러 차례 교황청에 사임을 요청했지만,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역대 교황들로부터 매번 거절당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카르투지오회를 헌신적으로 후원하며 수도회의 성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의 아버지도 노년에 카르투지오회에 입회하여 수도승으로 살다가 아들로부터 노자성체를 받아 모신 후 선종하였다. 성 후고는 직무상 카르투지오회에 입회할 수는 없었지만 자주 수도원을 방문하여 기도와 참회의 생활을 실천했다. 성 후고는 52년 동안 그르노블의 주교로 재임하며 교구를 정상화하고 개혁을 이루었고, 말년에는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도(Bernardus, 8월 20일) 등과 함께 대립교황 아나클레토 2세(Anacletus II)에 맞서 교황 인노첸시오 2세(Innocentius II)를 지지하여 교회의 분열을 막는 데 힘썼다. 성 후고는 1132년 4월 1일 자신의 교구에서 카르투지오회 수도승들에게 둘러싸여 선종했고, 1134년 4월 22일 선종 2년 만에 교황 인노첸시오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유해는 16세기까지 그르노블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안치되어 공경받았으나 위그노라고 불리는 개신교도와의 전쟁 중에 그들의 손에 들어가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카르투지오회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성 후고는 수도회에 입회한 적은 없지만 교회 미술에서 종종 카르투지오회 수도복을 입은 주교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는 그르노블의 수호성인이며 두통을 앓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도 공경을 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1일 목록에서 그르노블의 주교인 성 후고는 생애의 많은 시간을 고독 속에서 보냈고, 기적을 행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채 천국으로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그르노블에서 성 후고 주교가 성직자와 신자들의 윤리 생활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주교 재임 중에 고독을 사랑했던 그는 샤르트뢰즈 은둔소를 자신의 스승이었던 성 브루노와 그의 동료들에게 기증하고 그곳의 초대 원장이 되기도 했으며, 약 50여 년 동안 자선 활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교회를 다스렸다고 기록하였다. ‘그르노블의 성 후고’는 ‘샤토뇌프의 성 후고’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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