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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1월 24일 (토)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우르바노 (Urban)
    같은이름 우르바누스 , 우르반 , 어반
    축일 1월 24일
    신분 소년 , 순교자
    활동연도 +250년

       성 바빌라스(Babilas)는 시리아 안티오키아(Antiochia, 오늘날 튀르키예의 안타키아[Antakya])의 옛 주교들 가운데에서 성 이냐시오(Ignatius, 10월 17일) 이후 가장 유명한 인물로 240년경 제비누스(Zebinus) 주교의 뒤를 이어 제12대 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100년 후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였던 레온티우스(Leontius)의 보고에 따르면, 성 바빌라스는 244년 필리푸스 아라브스(Philippus Arabs, 244~249년 재위) 황제가 전임자인 고르디아누스 3세 황제(238~244년 재위)를 살인한 죄를 회개할 때까지 성당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고, 황제가 그 후에 속죄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필리푸스 아라브스 황제가 전임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필리푸스 아라브스 황제는 세례받은 신자로서 그리스도교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정치 · 경제 · 군사적 위기 속에서 그 타개책으로 로마 전통 종교의 부흥을 꾀하면서 그리스도인들도 고통을 겪게 되었다. 필리푸스 아라브스에 이어 황위에 오른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는 로마 제국의 종교적 기초가 그리스도교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리스도교를 근절하기 위한 박해를 본격화했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체포하여 처형하기 시작했다. 황제 앞에서도 당당하고 정의로웠던 성 바빌라스 주교도 이때 체포되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교회사가인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바빌라스는 모진 고문 뒤에 처형을 기다리며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죽기 전에 승리의 표시로 자신을 묶었던 쇠사슬과 자신을 함께 묻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런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에 따르면 성 바빌라스는 직접 그리스도교 신앙을 교육했던 세 명의 어린 제자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시리아 순교록이나 역사가인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 주교는 세 명의 아이들은 성 바빌라스의 아들이었다며 그들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옛 “로마 순교록”도 1월 24일 목록에서 여러 전승을 기초로 성 바빌라스의 수난과 순교에 대해 전해주었고, 그가 신앙을 가르친 세 소년의 이름으로 성 우르바누스(Urbanus, 또는 우르바노), 성 프릴리디아노(Prilidianus), 성 에폴로니오(Epolonius)를 제시하였다. 성 프릴리디아노는 성 프릴리다누스(Prilidanus, 또는 프릴리다노)로, 성 에폴로니오는 성 에폴로누스(Epolonus, 또는 에폴로노)로도 불린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성 바빌라스 주교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후 쇠사슬에 묶인 채 죽음을 맞이했고, 그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교육한 세 소년도 함께 순교했다고 하며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성 바빌라스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유해가 이장된 첫 번째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그의 시신은 본래 안티오키아에 묻혔으나 평소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갈루스 황제(251~253년 재위)에 의해 안티오키아 외곽의 다프네(Daphne, 오늘날 튀르키예의 하르비예[Harbiye])로 옮겨졌다. 그의 유해를 모신 새 성당은 유명한 아폴로 신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시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362년에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는 성인의 유물과 너무 가까워 아무런 신탁도 받지 못한다는 아폴로 신전의 불평을 듣고 성 바빌라스의 석관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도록 했다. 이때 수많은 신자가 시편을 노래하며 장엄하게 행렬했는데, 아폴로 신전이 어떤 강한 빛에 의해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후 다시 한번 안티오키아의 성 멜레시오(Meletius, 2월 12일) 주교에 의해 오론테스강(Orontes R.) 반대편에 새로 지은 대성당으로 성 바빌라스의 유해를 이장하였다. 381년에 선종한 성 멜레시오 주교의 시신도 성 바빌라스 유해 옆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 그의 유물은 다시 이탈리아의 크레모나(Cremona)로 옮겨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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