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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5월 30일 (금)부활 제6주간 금요일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녀 딤프나 (Dymphna)
    같은이름 딘프나 , 딤프네
    축일 5월 30일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7세기

       전승에 따르면 성녀 딤프나는 켈트족(Celts)의 다몬(Damon)이라는 이교도 족장의 딸로 7세기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성녀 딤프나는 그리스도교에 헌신하던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어머니의 배려로 유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혼하지 않고 일생을 그리스도께 봉헌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밀려왔다. 아내를 깊이 사랑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점점 광기 어린 사람으로 변해갔다. 재혼을 권유하는 신하들의 강력한 요청을 받아들여 아내와 같은 여성을 찾았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점점 죽은 아내만큼 아름답게 성장하는 딸을 보며 그녀와 결혼하려는 끔찍한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성녀 딤프나는 끔찍하게 변해버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자 궁을 빠져나와 자신의 고해신부인 성 제레베르노(Gerebernus, 5월 15일)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 벨기에의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 있는 안트베르펜(Antwerpen)으로 함께 피신했다. 이때 그녀를 도와 두 명의 동료도 같이 피신했는데, 그들은 모두 안트베르펜 근교 겔(Geel)이란 곳에 기도처를 세우고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성녀 딤프나는 겔에 정착해 성 제레베르노의 지도를 받아 은수자로 살면서 그 지역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한 쉼터를 짓고 기도와 봉사에 전념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분노한 성녀 딤프나의 부친은 사람들을 동원해 딸의 행적을 추적했고, 마침내 딸과 동료들의 은신처를 발견하자 병사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그는 병사들을 시켜 성 제레베르노 신부와 두 명의 동료를 살해하고, 성녀 딤프나에게 아일랜드로 돌아가자고 강요했다. 하지만 끝까지 돌아가기를 거부하며 저항하자 분노한 성녀 딤프나의 부친은 직접 칼을 뽑아 자신의 딸을 참수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5살이었다. 성녀 딤프나와 성 제레베르노가 살해된 후 그들의 유해는 겔의 주민들에 의해 수습되어 근처 동굴에 안장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13세기 무렵 마을 사람들이 동굴에서 빛나는 관에 안치된 두 시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관에는 ‘거룩한 동정 순교자 딤프나’라고 새겨진 판이 놓여 있었다. 그들의 유해는 새로운 묘에 안장되었고 성녀 딤프나에 대한 “순교록”도 작성되었다. 14세기에 성녀 딤프나를 기념하는 새로운 성당이 겔에 건립되었고, 그들의 유해 또한 새로 마련한 무덤에 안장되었다. 성 제레베르노의 유해는 후에 독일 지역의 크산텐(Xanten)으로 재이장되었다. 그때부터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순례자가 성녀 딤프나 성당으로 찾아왔고, 그녀의 무덤에서 기도하면서 뇌전증(간질)과 정신이상으로 고통받던 이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녀 딤프나는 신경 · 정신 관련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겔 지역은 정신질환자를 위한 독특한 가족 간호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딘프나(Dinfna) 또는 딤프네(Dymphe)로도 불리는 그녀의 축일은 예전부터 5월 15일에 기념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30일로 성녀 딤프나의 축일을 옮겨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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