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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8일 (수)사순 제4주간 수요일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나르치소 (Narcissus)
    같은이름 나르치수스 , 나르키소 , 나르키수스
    축일 3월 18일
    신분 주교 , 순교자
    활동지역 헤로나(Gerona)
    활동연도 +307년경?

       성 나르키수스(또는 나르치소)는 4세기 초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onia) 지방 북동쪽 헤로나(카탈루냐어로 지로나[Girona])의 주교로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가 시작되자 그의 부제인 성 펠릭스(Felix)와 함께 피신하였다. 그들은 북동쪽으로 이동해 당시 로마제국의 속주이자 요새인 아우구스타 빈델리쿰(Augusta Vindelicum), 즉 오늘날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연히 성녀 아프라(Afra, 8월 7일)와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힐라리아(Hilaria, 8월 12일)가 로마 군인들을 상대로 운영하던 매음굴로 들어가게 되었다. 성 나르치소 주교의 가르침과 기도에 감동한 성녀 아프라 가족과 하녀들 모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9개월 동안 그 지역에서 설교한 후 성녀 아프라의 삼촌이자 성녀 힐라리아의 오빠인 성 디오니시오(Dionysius, 2월 26일)를 아우크스부르크의 초대 주교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성녀 아프라와 그 가족과 동료들은 모두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성 나르치소 주교와 성 펠릭스 부제는 다시 헤로나로 돌아가서 3년 동안 열심히 신자들을 돌보고 이끌었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재판관 앞에서 당당히 신앙을 고백하고 307년경 순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8세기경 한 수도자가 “성녀 아프라의 수난”(Passio Sanctae Afrae)의 확장판으로 쓴 “성녀 아프라의 회심”(Conversio Sanctae Afrae)에서 유래하는데, 역사적 신뢰성이 부족한 전설적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헤로나에서 순교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까지 여행했다는 것은 전설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성 나르치소는 후대에 헤로나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그의 역사성에 대한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 신심 안에서 헤로나 교구에서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 나르치소의 무덤은 헤로나의 성 펠릭스 성당에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교의 지팡이와 검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그 옆에는 불신의 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18일 목록에서 티롤(Tirol) 지역에 최초로 복음을 전파한 성 나르치소 주교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기념하는데, 그는 에스파냐의 헤로나로 가서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고 성 펠릭스 부제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들의 이름을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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