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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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레안데르 (Leander)
같은이름 레안델 , 레안드로 , 레안드루스 축일 3월 13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세비야(Sevilla) 활동연도 534?-600년경
성 레안데르는 성 풀젠시오(Fulgentius, 1월 14일)와 성 이시도로(Isidorus, 4월 4일) 그리고 성녀 플로렌티나(Florentina, 8월 28일)와 형제지간으로 534년경 에스파냐 남동부 카르타헤나(Cartagena)에서 태어났다. 이들 남매는 모두 나중에 성인 · 성녀의 품에 올랐다. 에스파냐계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549년경 서고트족(Visigoths)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가족과 함께 에스파냐 남서부의 세비야로 이주하였다. 세비야에 정착한 성 레안데르는 그곳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설교와 저술 활동을 통해 서고트족이 에스파냐에 퍼뜨린 아리우스주의(Arianism) 이단에 맞서 가톨릭의 정통교리를 수호하고자 노력했다.
578년경 세비야의 주교가 된 그는 학교를 설립해 세비야를 가톨릭 교육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 무렵 아리우스 이단에 빠진 서고트족의 레오비길두스(Leovigildus) 왕의 아들 성 헤르메네질도(Hermenegildus, 4월 13일)를 만나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도와주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리우스 이단에 빠졌던 성 헤르메네질도 왕자는 가톨릭 신앙을 지닌 아내와 결혼하면서 정통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아버지에 의해 세비야로 유배를 온 상태였다. 아버지와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하다가 전투에서 패한 성 헤르메네질도는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왕자를 도왔던 성 레안데르와 가톨릭 신자들이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던 레오비길두스 왕에 의해 추방형을 받아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olis)로 추방된 그는 아리우스파를 반대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미래에 교황이 될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 교황사절을 만나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기쁨도 누렸다.
585년 성 헤르메네질도가 정통 신앙을 지키다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이듬해 레오비길두스 왕도 병에 걸려 죽었는데, 임종하기 전에 눈물로 회개하며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무렵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성 레안데르는 유배지에서 자신의 주교좌로 돌아왔다. 그는 왕위를 계승한 성 헤르메네질도의 동생 레카레두스(Reccaredus) 왕의 개종을 돕고, 아리우스 이단에 빠진 주교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589년에 제3차 톨레도(Toledo) 교회 회의를 소집해 에스파냐에서 아리우스주의를 극복하고 서고트족이 가톨릭으로의 개종하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도출해냈다. 그는 또한 신자들이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해 정통 신앙을 강화하도록 미사 중에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외우도록 하는 등 에스파냐 전례를 개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영향으로 수도 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곳에 수녀원을 설립한 여동생, 성녀 플로렌티나를 위해 수녀들을 위한 수도 규칙서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옛 “로마 순교록”과 동방 정교회는 2월 27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가 선종한 날인 3월 13일로 옮겨 기록하였다. 특별히 세비야의 주교로서 설교와 헌신을 통해 서고트족을 아리우스 이단에서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시키는 데 힘썼다고 전해주었다. 에스파냐 교회에서 교회 학자로 공경을 받는 그는 레안드루스(Leandrus, 또는 레안드로)로도 불린다.♣
- 성 레안데르 (Lea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