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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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피아크리오 (Fiacre)
같은이름 피아끄리오 , 피아끄리우스 , 피아커 , 피아크라 , 피아크레 , 피아크르 , 피아크리우스 축일 8월 30일 신분 수도승 , 은수자 활동연도 +670년경
성 피아크리우스(Fiacrius, 또는 피아크리오)는 610년경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원래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고대 아일랜드 이름인 피아크라(Fiachra)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 남동쪽 렌스터(Leinster) 지방의 킬케니(Kilkenny)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약초를 이용한 치료에 재능을 보여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수도원 인근에 은둔소를 세우고 엄격한 삶을 살았는데, 그의 치료 지식과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거룩한 은둔의 삶을 실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 중북부 파리(Paris) 근교로 피해 갔고, 모(Meaux)의 주교인 성 파로(Faro, 10월 28일)의 환대를 받아 모 외곽 브뤼이(Breuil)의 어느 샘물 근처 동굴에 새 은둔소를 세웠다. 그 후 성 피아크리오는 주교에게 음식과 약초를 재배할 정원을 만들 땅을 요청했고, 성 파로 주교는 그가 원하는 만큼의 땅을 제공해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성 파로 주교는 그에게 하루에 쟁기질할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성 피아크리오는 자신이 원하는 땅의 둘레를 돌면서 가래질을 했다. 그는 일반적인 가래가 아닌 지팡이를 이용했는데, 그의 지팡이가 닿는 곳마다 나무가 쓰러지고 수풀이 뿌리째 뽑혀 땅이 다져졌다고 한다. 그 지방의 한 여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가 마법을 사용한다고 주장했으나 성 파로 주교는 그것을 기적으로 보았다. 이렇게 해서 성 피아크리오의 정원이 기적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그는 정원을 가꾸며 기도와 단식, 고행을 실천하고 순례자를 위한 숙소도 만들었다. 또한 그가 손을 얹음으로써 여러 질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성 피아크리오는 670년경 8월 18일 선종하여 그 지역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그의 무덤은 치유를 얻고자 하는 이들의 주요 순례지가 되었다. 특히 치질 환자들의 수호자로 잘 알려졌다. 그의 유해는 그 뒤로 모 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대부분 이장되었고, 그의 은둔소가 있던 곳은 그의 이름을 따서 생피아크르앙브리(Saint-Fiacre-en-Brie)라는 마을로 발전했는데, 오늘날에는 센에마른(Seine-et-Marne)에 있는 생피아크르(Saint-Fiacre) 마을로 불린다. 성 피아크리오는 성 피아커(Fiacre, Fiaker)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30일 목록에서 모 교구의 증거자로서 성 피아크리오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프랑스 도시 모 인근의 브뤼이에서 원래 아일랜드 출신의 은수자인 성 피아크리오가 고독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교회미술에서 정원사의 수호성인인 성 피아크리오는 주로 삽과 책을 들고 있거나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 성 피아크리오 (Fiac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