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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2월 7일 (토)연중 제4주간 토요일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루카 (Luke)
    같은이름 누가 , 루가 , 루까 , 루카스 , 루크 , 타우마투르구스 , 타우마투르고
    축일 2월 7일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스테이리(Steiri)
    활동연도 +955년경

       성 루카스(Lucas, 또는 루카)의 별명은 ‘타우마투르구스’(Thaumaturgus, 기적을 행하는 사람[Wonder-worker])로 그리스 북서부의 카스토리아(Kastoria)에서 일곱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테네(Athenae) 앞바다에 있는 아이기나섬(Aegina Is.)의 농부였는데 사라센인들의 침공으로 그리스 북부 에게해에 면한 테살리아(Thessalia)로 이주해 가난하게 살았다. 성 루카는 어려서부터 금욕적으로 생활하며 신심 깊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소년으로 성장했다. 들에서 양들을 돌보거나 들일을 거들며 지냈는데, 종종 굶주리는 가난한 이를 위해 자기가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옷을 벗어 헐벗은 이에게 주기도 했다. 그 때문에 부친의 분노를 산 적이 많았다고 한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들일을 그만두고 수도자가 되려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으나 탈출한 노예로 착각한 군인에게 붙잡혔다가 신분 확인 후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두 번째로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두 명의 수도자를 만나 그들을 따라 아테네의 한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그의 어머니의 기도로 인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의 어머니도 결국 성 루카의 수도 성소를 이해하고 더는 그의 선택을 막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그리스 중부 마케도니아주(州)의 야니차(Giannitsa)에 은둔소를 짓고 은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밤에도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며 금욕적인 삶을 실천했다. 하지만 불가리아 군대에 의해 함께하던 이들과 함께 쫓겨나 해안을 따라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기적으로 치유하고 코린토스(Corinthos) 근처에 정착해 10여 년을 살았다.

       927년경 야니차의 은둔소로 돌아온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기적을 행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그런데 몇 년 후 마자르족(Magyar)으로 불리는 헝가리인들의 침략으로 인근 섬으로 피신해야 했고, 그 척박한 섬에서 3년 정도 극기와 절제를 실천한 후 그곳을 떠나 디스토모(Distomo) 남동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보이오티아(Boiotia)의 스테이리로 가서 은둔소를 세웠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이 모여들자 그는 헬리콘산(Mount Helicon) 경사면에 작은 수도원을 세우고 그곳에 살면서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그는 기도 중에 공중에 떠오른 최초의 성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955년경 선종하여 수도원에 묻혔고, 그가 설립한 수도원은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호시오스 루카스(Hosios Loukas, 성 루카) 수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10세기 중반에 설립된 이 수도원은 중세 비잔틴 건축과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념물 중 하나로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7일 목록에서 그리스 포키스(Phocis) 지방 스테이리에서 성 루카(Luke the Younger) 은수자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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