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
- 성 마르티리오 (Martyrius)
같은이름 마르띠리오 , 마르띠리우스 , 마르티리우스 축일 5월 29일 신분 독서자 , 순교자 활동지역 트렌토(Trento) 활동연도 +397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379~395년 재위) 치하에서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Milano)에 거주하던 많은 이방인 가운데 소아시아 지방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성 시시니오(Sisinius)와 그의 두 동료인 성 마르티리우스(또는 마르티리오)와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형제가 가장 유명했다. 시신니우스(Sisinnius, 또는 시신니오)로도 불리는 성 시시니오는 부제로, 성 마르티리오는 독서자로, 성 알렉산데르는 문지기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밀라노의 주교인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는 그 당시 성직자 부족으로 선교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트렌토의 성 비질리오(Vigilius, 6월 26일) 주교에게 그들을 추천하며 선교사로 파견하였다. 성 비질리오는 그들을 따뜻이 맞이하였고, 당시 이교도 지역이었던 트렌토 북부 남티롤(South Tyrol, 오늘날 이탈리아 가장 북쪽에 있는 볼차노[Bolzano] 자치주)의 발 디 논(Val di Non, 논 계곡)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위임하였다.
그들은 이교도들의 저항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알프스산맥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들의 선교 여행이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많은 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성당도 건립되었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성공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 개종한 이들에게 그들의 다신교 의식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강요하였다. 397년 5월 29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암바르발리아(Ambarvalia) 축제가 열렸을 때, 분노한 이교도들은 선교사들이 주민들을 속였다며 집으로 와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연로한 부제인 성 시시니오는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성 마르티리오는 정원으로 피신했으나 곧 발각되어 다음날 거친 돌 위에서 처형되었고, 성 알렉산데르 역시 붙잡혀 두 동료의 시신과 함께 사투르누스 신전 앞에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그들을 불태운 나무는 이교도들이 파괴한 성당의 자재들이었다. 그 뒤에 신자들에 의해 그들의 유해가 트렌토로 이장되었고, 순교한 장소인 논 계곡의 산제노(Sanzeno)에는 그들을 추모하는 성당이 세워졌다.
트렌토의 첫 순교자들로 공경받는 성 시시니오와 성 마리티리오와 성 알렉산데르의 선교와 순교에 대해서는 성 비질리오가 성 암브로시오에게 보낸 편지와 성 암브로시오의 전기에서 언급되었다. 그 외에도 토리노(Torino)의 성 막시모(Maximus, 6월 25일)와 브레시아(Brescia)의 성 가우덴시오(Gaudentius, 10월 25일)의 설교 등에서도 발견된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29일 목록에서 호노리우스 황제(395~423년 재위) 시대에 아나우니아(Anaunia, 오늘날의 빌레 다나우니아[Ville d’Anaunia])의 이교도들에게 박해를 받아 성 시시니오와 성 마르티리오와 성 알렉산데르가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트렌토의 발 디 논에서 카파도키아 출신의 성 시시니오 부제와 성 마르티리오 독서자, 성 알렉산데르 문지기가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주님을 찬양하며 복음을 전파했으나 작물을 정화하는 예식을 지내던 이교도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시시니오는 보통 수염을 기르고 성작을 들고 있고, 성 마르티리오는 책을, 성 알렉산데르는 열쇠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 성 마르티리오 (Martyrius)

본당소개
미사시간/찾아가는길
본당주보
굿뉴스 본당 갤러리
매일미사
가톨릭 주요기도문
성경
가톨릭성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