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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11월 1일 (금)모든 성인 대축일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베드로 바오로 나바로 (Peter Paul Navarro)
    같은이름 바울로 , 바울루스 , 베드루스 , 빠울로 , 빠울루스 , 파울로 , 파울루스 , 페드로 , 페트루스 , , 피터
    축일 11월 1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시마바라(Shimabara)
    활동연도 1560-1622년

       복자 페트루스 파울루스 나바로(Petrus Paulus Navarro, 또는 베드로 바오로 나바로)는 1560년 이탈리아 남부 바실리카타(Basilicata)의 라이노(Laino)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79년 놀라(Nola)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수련기부터 일본 선교를 희망했던 그의 뜻이 받아들여져 1884년에 인도의 고아(Goa)로 유학 갔고, 이듬해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1년 후인 1586년 8월에 일본 규수 북부 해안의 히라도섬(Hirado Island, 平戶島)에 도착했다. 그는 시코쿠(Shikoku)와 혼슈(Honshu)의 선교부에서 봉사하면서 일본 선교를 위해 언어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 대해 배우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일본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들의 문화와 전통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1612년 에도막부의 초대 쇼군[將軍]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금교령을 공포하고 1614년에 선교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령이 시행되자 일본에서 활동하던 80여 명의 예수회 동료들이 해외로 이동했고, 그를 포함해 24명은 일본에 남아 비밀리에 선교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주로 큐슈 서부의 시마바라 지역에서 거지, 장작 장수, 농부 등으로 위장하며 사제직을 수행했다. 이때 그는 일본인으로 교리 교사였던 복자 베드로 오니즈카 산다유(Petrus Onizuka Sandayu)와 복자 디오니시오 후지시마(Dionysius Fujishima)의 도움을 받았다. 복자 베드로 오니즈카 산다유는 10대 소년이었지만 열심한 신자인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선교사들과 자주 만나 신앙생활을 했다. 복자 디오니시오 후지시마는 결혼했었으나 아내가 그를 떠난 1615년부터 복자 베드로 바오로 나바로 신부와 함께 지내며 그를 도왔다.

       1621년 12월 말경 복자 베드로 바오로 나바로 신부와 그와 함께 활동하던 두 명의 교리 교사와 그들이 데리고 있던 하인인 복자 클레멘스 큐에몬(Clemens Kyuemon)이 모두 사제 사냥꾼에게 붙잡혔다. 다행히 그들을 체포한 아리마(Arima, 有馬)의 다이묘(大名)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톨릭에 호의적이어서 종종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고 다이묘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다이묘는 그들이 처형될 것을 알고 비밀리에 마카오로 탈출시키려고 했으나 1622년 10월 27일 상부로부터 그들을 화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복자 베드로 바오로 나바로 신부와 동료들은 슬퍼하기보다는 기뻐하며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처형일인 11월 1일, 복자 베드로 바오로 나바로 신부는 마지막으로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예수회원이 되기를 청하는 복자 베드로 오니즈카 산다유와 복자 디오니시오 후지시마의 청을 받아들여 그들의 서원식을 거행했다. 오후가 되자 복자 베드로 바오로 나바로 신부와 새로 서원한 두 명의 수사와 신심 깊은 하인인 복자 클레멘스 큐에몬은 군인들에 의해 나가사키(Nagasaki) 시마바라의 바닷가 형장으로 끌려가 화형을 당해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은 모두 1867년 5월 7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다른 201명의 순교자와 함께 복자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일본 시마바라에서 화형으로 순교한 네 명의 복자 이름을 11월 1일 목록에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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