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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7일 (목)부활 제5주간 목요일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가톨릭 성인/축일
    복녀 기셀라 (Gisela)
    같은이름 기젤라 , 지셀라 , 지젤라
    축일 5월 7일
    신분 왕비 , 수녀원장
    활동지역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1060년

       복녀 기셀라는 985년경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하인리히 2세(Heinrich II) 공작과 부르고뉴(Bourgogne)의 기젤라(Gisela)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하인리히 2세의 누이동생으로 어려서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수도원에서 성 볼프강(Wolfgang, 10월 31일) 주교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녀는 995년 10살의 어린 나이에 헝가리 게자(Geza) 대공의 아들인 성 스테파노(Stephanus, 8월 16일)와 결혼했다. 이 혼인은 헝가리에서 활발히 복음을 전하던 프라하(Prague)의 성 아달베르트(Adalbert, 4월 23일)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로써 두 나라 간의 대립에서 평화로운 관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복녀 기셀라는 997년에 게자 대공이 사망한 후 남편인 성 스테파노가 마자르족(Magyars)의 통치자가 되어 성 아달베르트 주교의 도움을 받아 헝가리를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들어갈 때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녀는 헝가리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데 전념하며 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다.

       그런데 그녀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왕위를 계승할 아들인 성 에메리코(Emericus, 11월 4일) 왕자가 1031년 젊은 나이에 사냥 중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게다가 아들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진 남편이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친척 간의 암투와 음모로 큰 시련을 겪으며 건강마저 나빠져 103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하고 말았다. 남편과 사별한 후 남편의 조카이자 왕위를 계승한 피터(Peter)는 복녀 기셀라를 돌보겠다는 성 스테파노 왕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녀의 재산을 빼앗고 감금한 채 외부와의 연락을 금하는 등 학대를 자행했다. 포로 신세로 지내던 복녀 기셀라는 1041년에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피터 왕을 몰아낸 후 하인리히 3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그 후 그녀는 수행원들과 함께 고향인 바이에른으로 돌아왔고, 1045년에 파사우(Passau) 근처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의 니데른부르크(Niedernburg)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세 번째 수녀원장으로 선출되어 1060년 선종할 때까지 수도원에 머물렀다.

       복녀 기셀라는 선종 후 니데른부르크의 성 십자가 수도원 성당에 묻혔다. 그녀의 무덤은 오랫동안 헝가리 순례자들의 찾는 목적지가 되었다. 왕비이자 수녀원장인 기셀라는 공식적으로 시복되거나 시성되지 않았으나 오래전부터 복녀로 불리며 공경을 받았다. “성인전집”(聖人傳集, Acta Sanctorum)을 편집 간행하는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인 ‘볼랑디스트’(Bollandists)도 그녀를 복녀로 표기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7일 목록에 복녀 기젤라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그녀가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왕과 결혼하여 남편의 신앙 전파 활동을 도왔고, 남편이 선종한 후에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유배되었다가 독일 바이에른의 니데른부르크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나중에 그 수도원의 수녀원장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녀는 헝가리의 복녀 기셀라(Gisela/Gizella/Gisella) 또는 바이에른의 복녀 기셀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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