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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2월 21일 (토)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토마스 포모트 (Thomas Pormort)
    같은이름 도마 , 토머스 , 포르모르트 , 포르모트 , 포모르트
    축일 2월 21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92년

       복자 토마스 포모트는 1559년경 영국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Lincolnshire)의 그림즈비(Grimsby) 인근 리틀 림버(Little Limber)에서 성공회로 개종한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교에서 수학했는데,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사제가 되기 위해 1581년 1월 15일 비밀리에 프랑스 북동부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으로 갔다. 그리고 1582년부터 이탈리아 로마(Roma)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공부하고 1587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영국 웨일스(Wales) 출신인 오웬 루이스(Owen Lewis)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던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방 카사노 알조니오(Cassano all’Jonio) 교구로 가서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1590년에 복자 토마스 포모트는 1579년에 성 가롤로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추기경이 밀라노(Milano)의 세나토 궁전(Palazzo del Senato)에 설립한 스위스 대학의 학업 담당자가 되었다.

       하지만 복자 토마스 포모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사제가 된 후 꿈꾸었던 대로 고국인 영국으로 가서 활동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1579년 9월 대학 일을 사임하고 11월 말에 브뤼셀(Brussels)에 도착해 휘트기프트(Whitgift)라는 가명으로 가톨릭 신자이자 기사인 제프리 폴 경(Sir Geoffrey Pole) 부인의 하인 신분으로 영국으로 들어왔다. 1591년 7월 런던에서 체포되기까지 그의 활동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행히 첫 번째 체포 이후 탈출에 성공했으나 몇 달 후 다시 체포되어 당시 감옥으로 사용된 브라이드웰(Bridewell) 궁전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는 가톨릭 사제 사냥꾼으로 유명한 리차드 톱클리프(Richard Topcliffe)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후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의 영세 대부이자 캔터베리(Canterbury)의 성공회 대주교인 존 휘트기프트(John Whitgift)는 사형 집행을 지연시키며 그를 다시 성공회로 개종시켜 구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복자 토마스 포모트는 개종을 거부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1592년 2월 20일 런던의 성 바오로 대성당(St Paul’s Cathedral) 묘지에 설치된 교수대 위에서 교수형과 사지가 잘리는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복자 토마스 포모트는 1987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85위의 순교자’(Eighty-five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복자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 다음 날인 2월 21일에 기념하는데(이유는 알 수 없지만), 200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21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영국 런던에서 복자 토마스 포모트 신부가 가톨릭 사제라는 이유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서 감옥에 갇혀 잔인한 고문을 받은 후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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