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수유동성당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5년 7월 6일 (일)연중 제14주일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고아르 (Goar)
    축일 7월 6일
    신분 신부 , 은수자
    활동지역 아키텐(Aquitaine)
    활동연도 +6세기

       성 고아르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8세기에 프륌(Prum)의 한 수도승이 쓴 전기에 따르면, 성 고아르는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사제품을 받고 본당 사제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더 가까이 섬기고 싶은 마음에 은둔 생활에 이끌렸고, 결국 트리어(Trier) 주교의 허락을 받고 독일 중서부 오버베젤(Oberwesel) 근방의 라인강 기슭에 은둔소를 짓고 정착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고요한 생활 속에 기도에 전념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순례자들을 도와주었다.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주변에 제자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인근에 사는 농부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그의 성덕과 인내심 그리고 놀라운 기적으로 인해 한시도 조용히 생활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일부 성직자들이 무고로 인해 그 지방의 주교에게 소환되었지만, 곧 그의 결백이 기적적으로 밝혀진 일도 있었다.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왕인 시기베르트 1세(Sigebert I)는 그의 덕행에 큰 감명을 받아 트리어의 주교직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성 고아르는 6세기 후반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가 지내던 은둔소는 765년에 피핀 왕(Pepin the Short)이 아이펠(Eifel)에 있는 프륌 수도원장에게 넘겨주었고, 그 뒤로 성 고아르를 기리는 대성당과 수도원으로 거듭나면서 중요한 순례지이자 그의 이름을 딴 장크트고아르(Sankt Goar)라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6일 목록에서 트리어 근처에 살았던 성 고아르 신부의 이름만 간단히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본래 프랑스 아키텐 출신인 성 고아르 신부가 라인강 기슭으로 와서 트리어 주교의 지원을 받아 순례자를 환대하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구호소와 기도의 집을 지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고향에서 포도나무를 라인강 지역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포도주 제조업자의 수호성인으로, 그리고 순례자들을 환대했던 생활로 인해 호텔종사자들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