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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8월 11일 (화)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가톨릭 성인/축일
    성녀 루스티쿨라 (Rusticula)
    같은이름 루스띠꼴라 , 마르시아 , 마르치아 , 마르키아 , 루스티콜라 , 루스띠꿀라
    축일 8월 11일
    신분 수녀원장
    활동지역 아를(Arles)
    활동연도 +632년

       성녀 루스티쿨라는 556년경 프랑스 남동부 베종(Vaison, 오늘날의 베종라로맹[Vaison-la-Romaine]) 근처에서 부유한 고대 귀족인 갈로로망(Gallo-Roman) 가문의 발레리아누스(Valerianus)와 클레멘티아(Clementia)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그녀의 상속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려는 케라오니우스(Cheraonius)에게 납치되었다. 다행히 오툉(Autun)의 주교인 성 시아그리오(Syagrius, 9월 2일)가 부르고뉴(Bourgogne)의 왕 성 군트람노(Guntramnus, 561~593년 재위)에게 탄원한 덕분에 풀려나 561년에 아를의 생장(Saint-Jean) 수도원으로 보내져 루스티쿨라라는 이름을 받고 릴리올라(Liliola) 원장 수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성녀 루스티쿨라는 모범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았고, 릴리올라 원장 수녀가 선종한 뒤 1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원장으로 선출되어 약 60여 년 동안 그 직책을 수행하였다. 그녀는 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는 메로빙거 왕조 시대 프로방스 지방의 격동기였다. 그녀는 원장으로서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고 수녀들의 교육을 강화하며 수도원 재산을 관리하는데 헌신하였다.

       성녀 루스티쿨라는 632년 8월 11일 짧은 투병 생활 끝에 선종하여 아를의 수도원에 묻혔는데, 프랑스 혁명으로 수도원이 폐쇄된 후 그녀의 유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녀의 생애에 관한 주요 자료는 그녀가 선종하고 한 세대 후에 프로방스 지방 생폴트루아샤토(Saint-Paul-Trois-Chateaux)에 살던 플로렌티우스(Florentius) 신부가 쓴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녀의 축일이 로마 보편 전례력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13세기와 14세기 프로방스 지방의 여러 미사 전례서와 성무일도에서 언급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1일 목록에서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아를에서 성녀 루스티쿨라 수녀원장이 약 60년 동안 거룩한 방식으로 수녀들을 이끌었다고 기록하며 그녀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성녀 루스티쿨라는 성녀 루스티콜라(Rusticola) 또는 성녀 마르시아(Marci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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