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양동성당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홍) 2025년 6월 8일 (일)성령 강림 대축일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가톨릭 성인/축일
    성 메다르도 (Medard)
    같은이름 메다르 , 메다르두스 , 메따르도 , 메따르두스 , 메타르도 , 메타르두스
    축일 6월 8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누아용(Noyon)
    활동연도 +561년

       성 메다르두스(Medardus, 또는 메다르도)는 456년경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역의 살랑시(Salency)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넥타리두스(Nectaridus)는 프랑크족 출신의 귀족이었고, 그의 어머니 프로타기아(Protagia)는 갈리아 지역에 정착한 로마인의 후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상 베르망(Vermand)과 투르네(Tournai)를 자주 갔는데, 그곳은 오늘날 프랑스 북동부의 도시인 생캉탱(Saint-Quentin) 지역이다. 성 메다르도의 부모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그를 생캉탱의 수도원으로 보냈다. 평소 정직하고 사랑이 넘쳤던 그는 베르망의 주교를 도우며 신학과 성경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 그렇게 평범한 삶을 지내다가 그의 경건함과 지식을 눈여겨본 베르망의 주교에 의해 33살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설교와 선교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두 사용할 정도로 자선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또한 국왕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과감히 비판하는 용기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프랑스 북부 지방을 다스리던 이교도 왕인 클로비스 1세(Clovis I)가 살리족(Salier)을 통합한 후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을 정복해 프랑크족 중심의 메로빙거 왕조의 창시자로서 프랑크 왕국을 세울 때였다. 530년 베르망의 주교가 선종한 후 그는 베르망의 후임 주교로 선임되었다. 비록 그는 주교가 되기를 원치 않았으나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를 주교로 축성한 이는 국왕 클로비스 1세를 개종시키고 세례를 준 랭스(Reims)의 성 레미지오(Remigius, 1월 13일) 주교로, 성 메다르도 역시 성 레미지오와 함께 국왕의 개종에 많은 공헌을 했다. 주교가 된 후 성 메다르도는 자신의 주교좌를 더 크고 안전한 도시인 오늘날의 누아용으로 옮겼다.

       532년 친구이던 투르네의 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2월 20일) 주교가 선종하자 장례식에 참석하러 갔던 성 메다르도는 투르네의 시민과 사제들로부터 자기 교구를 맡아달라는 간청을 받았다. 그는 한 주교가 두 교구를 맡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랭스의 성 레미지오와 국왕까지 나서자 순명의 마음으로 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누아용과 투르네 교구 간의 통합은 1146년까지 지속되다가 다시 분리되었다. 542년에는 국왕 클로타르 1세(Chlothar I)의 부인인 성녀 라데군다(Radegundis, 8월 13일) 왕비가 그에게 도망 오는 일이 생겼다. 클로타르 1세와 정략결혼 후 남편의 난폭한 성격을 참으며 10여 년을 살던 성녀 라데군다는 하나뿐인 오빠가 클로타르 1세에 의해 살해당하자 더는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해 왕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갈 마음을 먹었다. 성 메다르도는 고심 끝에 왕비의 청을 받아들였고 왕도 결국은 허락하였다. 성녀 라데군다는 성 메다르도 주교의 도움으로 수도 서원을 하고 푸아티에(Poitiers)에 수녀원을 세웠다.

       성 메다르도는 561년에 평화로이 선종하였다. 국왕과 왕자들이 그의 시신을 직접 메고 묘지까지 갔을 정도로 그는 왕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중에 국왕은 수아송(Soissons) 근처 자신의 영지로 성 메다르도의 무덤을 옮기고 그곳에 그의 이름을 딴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농부, 포도주 양조자, 우산 제작자 등의 수호성인으로 특별히 날씨와 연관된 전설이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성 메다르도가 어린 시절 그의 위를 맴도는 독수리에 의해 비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필요에 따라 비가 오거나 맑게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여겨졌고, 그의 축일에 비가 오면 40일 동안 계속 오고 그렇지 않으면 40일 동안 쾌청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메타르두스(Metardus, 또는 메타르도)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8일 목록에서 성 메다르도를 언급한 뒤에 루앙(Rouen)의 주교인 성 질다르도(Gildardus)를 소개하면서 같은 날 태어나고, 같은 날 주교가 되고, 같은 날 선종해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간 형제라고 기록했는데, 9세기경에 생겨난 전설적 이야기로 신빙성은 없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두 성인 주교에 대해 기록하면서 형제 여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