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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1월 10일 (토)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밀티아데스 (Miltiades)
    같은이름 멜키아데스 , 밀시아데스 , 밀씨아데스
    축일 1월 10일
    신분 교황 , 증거자
    활동연도 +314년

       성 밀티아데스는 5세기부터 편찬된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북아프리카 출신의 로마시민이었다. 교황이 되기 전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끝날 무렵 로마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311년 7월 2일에 교황 성 에우세비오(Eusebius, 8월 17일)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다. 성 밀티아데스 교황의 재임 기간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가 밀비오 다리(Pons Milvius) 전투(312년 10월 28일)에서 경쟁자인 막센티우스(Maxentius)를 물리치고 승리함으로써 그리스도교에 대한 오랜 박해가 종식되던 시기였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전력의 열세 속에서 하느님께 기도했는데, 이는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Helena, 8월 18일)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꿈속에서 맑은 하늘에 뜬 십자가(또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XP 모노그램)를 보았고, 다음날 병사들의 방패에 키로(XP) 또는 십자 문양을 새겨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 승리를 계기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2월 밀라노(Milano)에서 관용 칙령을 반포했고,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 안에서 더는 박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렇듯 성 밀티아데스 교황의 재임 시기는 박해에서 신앙의 자유로 넘어가는 변화와 평화의 시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도나투스(Donatus) 이단이 아프리카에서 서서히 고개를 쳐들며 교회 내의 혼란을 일으키던 시대였다. 도나투스는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박해 시기에 배교한 이들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특히 성사와 신학적 문제까지 제기했는데, 배교자나 이단자가 집행한 성사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사의 은총이 사효적(事效的, ex opere operato)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효적(人效的, ex opere operantis)으로 집전자의 성성(聖性)과 정통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단으로 단죄받고 점차 사라졌지만, 성 밀티아데스 교황의 재임 중에 많은 분란과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성 밀티아데스 교황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황궁으로 선물한 파우스타 황후의 궁전(현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도나투스파 이단을 단죄하였다. 교황 성 밀티아데스는 314년 1월 10일 선종하여 로마의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에 묻혔다. 그는 카타콤바에 묻힌 마지막 교황으로 3년이란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에게 “평화의 참된 아들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아버지”라는 격찬을 들었다.

       5세기에 편찬된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 따르면 그의 축일은 1월 10일에 기념했었다. 13세기에 그에게 ‘순교자’라는 신분과 함께 12월 10일에 기념하도록 로마 보편 전례력에 포함되었다. 이는 그가 카타콤바에 묻힌 마지막 교황으로 비록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박해 중에 많은 고통을 겪었기에 주어진 칭호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후에 순교자라는 칭호는 삭제되었고,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과 함께 축일도 선종한 날인 1월 10일로 복구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과거 전통대로 12월 10일 목록에서 성 멜키아데스(Melchiades) 교황이 로마에서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년, 306~308년 재위)의 박해로 많은 고통을 겪은 후 교회에 평화가 찾아왔을 때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렸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10일 목록에서 로마 아피아 가도에 있는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있는 아프리카 출신의 교황 성 밀티아데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회와 맺은 평화를 경험했고, 도나투스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위해 현명하게 일했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밀티아데스는 멜키아데스로도 불리는데, 밀티아데스를 더 정확한 이름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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