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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22일 (일)사순 제5주일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바실리오 (Basil)
    같은이름 바실리우스
    축일 3월 22일
    신분 사제 , 순교자
    활동지역 안키라(Ancyra)
    활동연도 +362년

       성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 안키라(오늘날 튀르키예의 수도인 앙카라[Ankara])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었다. 4세기 중엽 아리우스파(Arianism)가 그들의 이단 교리를 전파하고 있을 때 성 바실리오는 사제가 되었고, 정통 교리를 지키며 아리우스파에 맞서는 마르첼루스(Marcellus) 주교에게 가톨릭의 교리를 잘 배워 익혔다. 그래서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337~361년 재위)에 의해 마르첼루스 주교가 추방된 후에 그의 후임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아리우스파는 그의 전례 거행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성 바실리오는 극렬한 반대에도 굴복하지 않아 황제의 반대파로 낙인찍혔고, 그로 인해 343년 사르디카(Sardica, 오늘날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Sofia]) 시노드의 결정에 따라 주교좌에서 강제로 내려와야 했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정통 교리를 준수하도록 더는 가르칠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350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와 시노드의 결정으로 성 바실리오는 어렵게 주교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정통 가톨릭 교리와 아리우스주의 사이의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기 어려운 시기였기에 이 논쟁은 단순히 교의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360년 극단적인 아리우스파들이 성 바실리오의 주교직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종교 집회를 금지하였다. 그리고 그해에 열린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시노드에서 아리우스파 주교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폐위되어 일리리아(Illyria, 발칸 반도 서부 지역)로 추방되었다. 그는 용감히 황제 앞으로 나가서 신앙을 옹호하고 싶었지만, 361년에 콘스탄티우스 2세가 사망하고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가 즉위하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는 아리우스파에 의해 362년 6월 29일 온몸이 찢기는 잔인한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22일 목록에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의 안키라에 성 바실리오 사제가 있었는데,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견딘 후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바쳤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갈라티아의 안키라에 성 바실리오 사제가 있었는데, 그는 콘스탄티우스 황제 재위 내내 아리우스파의 강력한 반대자였고 나중에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한 후 체포되어 지방 총독 앞으로 끌려가 많은 고문을 받은 후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그의 축일은 사도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 축일과 중복되는 관계로 3월 22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동방 정교회는 6월 28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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