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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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발레리코 (Walericus)
같은이름 발라리코 , 발라리쿠스 , 발레리 , 발레리꼬 , 발레리꾸스 , 발레리쿠스 , 왈라릭 , 왈라리코 , 왈라리쿠스 , 왈라리크 축일 4월 1일 신분 신부 , 수도원장 활동지역 뢰코네(Leuconay) 활동연도 +7세기
성 발레리쿠스(또는 발레리코)는 6세기 중반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어느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년 시절 목동으로서 양을 돌보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근처 부유한 시민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 선생님에게 글자를 가르쳐달라고 간청해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구약성경의 시편을 베낀 후에 양을 치는 동안 매일같이 시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서 거의 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삼촌이 수도승으로 있는 오투몽(Autumon)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이 너무나 좋아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직 수도원에 입회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곳에 머물며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몇 년 후에 그는 그곳을 떠나 오세르(Auxerre) 교외의 성 제르마노(Saint-Germain)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그의 체류가 장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수도승들은 자기에게 맞는 스승을 만나 완덕의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는데, 성 발레리코도 그런 수도승 중 한 명이었다.
그 무렵 보비오(Bobbio)의 성 골룸바노(Columbanus, 11월 23일)가 갈리아 지방에서 활발히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명성에 매료된 성 발레리코는 자신의 도움으로 회개하고 수도 생활을 시작한 오세르의 귀족 보본(Bobon)과 함께 뤽세이유(Luxeuil) 수도원으로 가서 수도승으로 받아주길 간청하여 들어갔다. 그는 성 골룸바노의 수도 규칙에 따라 육체노동도 해야 했는데, 특별히 원예 기술이 탁월해 해충으로부터 과일과 채소를 보호하는 능력은 거의 기적으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수도 서원을 하고 약 15년 정도 머물렀다. 610년경 부르고뉴 왕국의 테우데리크 2세(Theuderich II)가 자신의 부도덕한 결혼을 반대한 성 골룸바노와 아일랜드 출신 수도승을 모두 추방했을 때, 한동안 성 발레리코가 수도원을 맡았다. 성 골룸바노를 따라갔던 성 에우스타시오(Eustasius, 4월 2일)가 뤽세이유 수도원의 제2대 수도원장으로 돌아온 후 성 발레리코는 발돌라누스(Waldolanus)라는 수도승과 함께 프랑스 북부 네우스트리아(Neustria) 선교를 위해 파견되었다.
네우스트리아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탁월한 설교와 기적으로 많은 개종자를 얻고 큰 성공을 거둔 성 발레리코는 613년부터 클로타르 2세(Chlothar II, 584~629년 재위) 왕이 준 땅에 정착하기로 했다. 그는 아미앵(Amiens) 주교의 허락을 받고 솜강(Somme R.) 어귀의 뢰코네에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원은 아미앵 교구의 첫 번째 수도원으로 곧 많은 제자가 모여들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시에 한적한 곳에서 은수 생활도 병행하다가 620년경 4월 1일 뢰코네에서 선종하였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622년 12월 12일에 선종했다고 한다. 그 후 그의 무덤에서 치유 기적이 많이 일어나면서 순례자가 모이고, 수도원 주변으로 생발레리쉬르솜(Saint-Valery-sur-Somme)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1일 목록에서 프랑스 아미앵에 성 발레리코 수도원장이 있었는데, 그의 무덤에서 자주 기적이 일어나 유명해졌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아미앵 근처 뢰코네에 많은 동료를 은둔 생활로 이끈 성 발레리코 사제가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성 발라리쿠스(Walaricus, 또는 발라리코) 또는 성 발레리(Valery)로도 불리며 12월 12일에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 성 발레리코 (Waler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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