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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2월 8일 (일)연중 제5주일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베드로 이녜오 (Peter Igneus)
    같은이름 베드루스 , 이그네오 , 이그네우스 , 이네오 , 이네우스 , 이녜우스 , 페드로 , 페트루스 , 피터
    축일 2월 8일
    신분 추기경 , 주교
    활동지역 알바노(Albano)
    활동연도 +1089년

       복자 페트루스 이녜우스(Petrus Igneus, 또는 베드로 이녜오)는 11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에서 알도브란디니(Aldobrandini)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젊은 나이에 친척인 성 요한 괄베르토(Joannes Gualbertus, 7월 12일)의 지도하에 그가 설립한 발롬브로사(Vallombrosa) 연합회의 수도사가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당시 피렌체의 주교가 성직 매매를 통해 주교가 되었고, 이에 반대하며 개혁을 요구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성 요한 괄베르토와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수도사들이었다. 성직 매매 사실을 부정하며 수도회를 위협하는 피렌체 주교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옮음을 증명하기 위해 복자 베드로 수사는 자발적으로 ‘하느님의 심판’으로 불리던 불에 의한 심판을 받았다. 즉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뜨겁게 불타는 석탄 위를 걷는 시험이었다. 그는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고 불길로부터 구해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 불타는 석탄 위를 걸어갔다. 그는 기적적으로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지나갔고, 주교는 뒤늦게 자기 죄를 고백하였다. 그래서 복자 베드로 수사는 뜨거운 불의 심판을 이겨냈다 하여 ‘이그네우스’(Igneus, 또는 이녜우스, 이녜오)라는 별명을 얻고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교황 알렉산데르 2세(Alexander II)는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렌체 주교를 해임하였다. 해임된 주교는 회개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여생을 참회와 기도로 보냈다고 한다. 그 후 1068년에 복자 베드로 이녜오는 성 요한 괄베르토에 의해 푸체키오(Fucecchio)에 있는 산 살바토레(San Salvatore)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072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2세는 그를 로마(Roma) 교외 알바노(오늘날의 알바노라치알레[Albano Laziale])의 추기경 주교로 임명하였다. 그 뒤로 복자 베드로 이녜오 추기경은 성직 매매를 금지하고 교회를 개혁하려는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를 도와 여러 번 교황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1089년 11월 11일 알바노에서 선종했다고 알려졌고, 나중에 그의 시신은 발롬브로사로 옮겨져 수도원에 묻혔다.

       복자 베드로 이녜오에 대한 공경은 1673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발롬브로사 연합회와 피렌체 교구에서 성인으로서 공경을 받아 왔으나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피렌체 교구의 전통에 따라 2월 8일 목록에서 복자 베드로 이녜오에 대해 기록하며, 그가 불의 심판을 통과해 ‘이그네우스’라는 별명을 얻고 교회 개혁과 쇄신을 위해 헌신한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수사이자 알바노의 추기경 주교였다고 기록하였다. 교회미술에서 복자 베드로 이녜오는 보통 장백의를 입고 영대를 걸친 채 십자가를 쥐고 스승인 성 요한 괄베르토를 향해 불의 심판을 통과하는 젊은 수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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