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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4년 12월 18일 (수)12월 18일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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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시미로 (Casimir)
    같은이름 가시미루스 , 까시미로 , 까시미루스 , 카시미로 , 카시미루스 , 카시미르
    축일 3월 4일
    신분 왕자 , 증거자
    활동연도 1458-1484년

       성 카시미루스(Casimirus, 또는 가시미로)는 폴란드(Poland)의 국왕이자 리투아니아(Lithuania)의 대공(大公)인 카시미르 4세(Casimir IV)와 독일의 황제 알베르트 2세(Albert II)의 딸인 오스트리아의 엘리사벳(Elizabeth) 사이에서 태어난 13명의 자녀 가운데 셋째로 폴란드 크라쿠프(Krakow)의 바벨 성(Wawel Castle)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과 정결의 소중함을 어려서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다. 여섯 살부터는 요한 들루고즈(Joannes Dlugosz) 신부에게 학문과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스럽고 엄격한 생활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생활에 대한 원의를 키워갔다.

       그는 부왕과 헝가리의 귀족들로부터 헝가리의 국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를 축출하는 공작에 군대를 인솔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그 계획이 부당하다는 확신에 따라 거부하였다. 그로 인해 부왕의 노여움을 사 작은 성에 감금되었지만, 결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기도와 수덕 생활에 전념할 좋은 기회로 삼았다. 또한 그는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딸과 결혼시키려는 부왕의 계획도 끝까지 거부하고 동정을 지켰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뛰어났던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성모를 찬송하세’(Omni die dic Mariae / Daily, Daily Sing to Mary)라는 찬가를 직접 지어 불렀는데, 오늘날까지도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어 불리는 찬가가 되었다.

       성 가시미로는 부왕이 리투아니아에 국사로 가 있는 1481~1483년까지 부왕을 대신해 폴란드를 통치하였다. 당대의 전기에 따르면, 성 가시미로는 ‘가난한 자의 옹호자’로 불릴 정도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잘 돌보아주었고, 권좌에 앉아 다스리기보다는 늘 가난한 이를 위해 봉사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1484년 26세의 나이로 대공의 직위를 겸하고 있던 리투아니아를 방문하던 중 폐결핵으로 3월 4일 그로드노(Grodno) 궁성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빌나(Vilna,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Vilnius])의 주교좌 성당에 안치되었다. 살아서도 백성의 존경을 받았던 성 가시미로는 사후에 더 큰 공경을 받았고, 그의 무덤에서도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에 대한 시성 절차가 시작되어 1521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시성 여부가 확정되었는데, 그해 12월에 교황이 전염병으로 갑작스럽게 선종하고 1527년에 발생한 로마 약탈 사건으로 교황청의 많은 중요 문서가 소실되면서 그의 시성 결정 여부를 문서로 확인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공경은 계속되었고, 이미 1583년에 출판된 “로마 순교록”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1602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는 3월 4일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성 가시미로의 축일을 기념하는 것을 승인하면서, 그가 이미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음을 확인해주었다. 이를 기념해 1604년 선종 120년 만에 그의 관을 열었을 때, 그의 유해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고 손에는 그가 작성한 성모 찬가가 글씨도 선명한 상태로 들려 있었다고 한다.

       성 가시미로는 17세기 초에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고, 폴란드의 요청으로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도 선포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4일 목록에서 그가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음을 전해주었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폴란드 국왕의 아들인 성 가시미로 왕자가 신앙, 순결, 참회, 가난한 이들을 향한 관대함, 성찬례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신심으로 빛났으며 어린 나이에 결핵에 걸려 빌뉴스 인근 그로드노에서 주님의 품속에 잠들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보통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나 직접 작성한 성모 찬가를 손에 들고 있는 젊은 왕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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