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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8월 24일 (일)연중 제21주일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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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우제리코 (Gaugericus)
    같은이름 가우게리코 , 가우게리쿠스 , 가우제리꼬 , 가우제리꾸스 , 가우제리쿠스 , 게리 , 제리 , 고제리크
    축일 8월 11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캉브레(Cambrai)
    활동연도 +625년경

       성 가우게리쿠스(또는 가우제리코)는 550년경 오늘날 프랑스 북동부 아르덴(Ardennes) 지방의 이부아(Yvois, 오늘날 벨기에와의 국경 지대에 있는 카리냥[Carignan])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심 깊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 안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당시 그곳은 독일의 트리어(Trier) 교구에 속해 있었는데, 트리어의 주교인 성 니체시오(Nicetius, 10월 1일)의 후계자인 성 마녜리코(Magnericus, 7월 25일)가 방문했을 때 성 가우제리코의 모범적인 행동과 재능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성 마녜리코는 성 가우제리코가 시편을 모두 암송하도록 한 후에 부제품을 주었다. 부제품을 받은 후 성 가우제리코는 더욱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캉브레와 아라스(Cambrai–Arras) 주교좌가 공석이 되면서 586년경 그가 성직자와 시민들에 의해 그곳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주교좌를 캉브레로 옮기고 교구 내 이교도의 잔재를 근절하는 데 힘써 주민들 사이에 뿌리 깊게 내린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많은 이의 개종을 이끌었다. 또한 전쟁 포로와 노예들을 돌보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전설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센강의 한 섬(지금의 생 제리[Saint-Gery] 광장)에 성당을 지었는데, 그 섬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면서 오늘날의 브뤼셀(Brussels)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39년간 주교로 사목하고 625년경 8월 11일 캉브레에서 선종하여 그가 캉브레 외곽에 건립한 생 메다르(Saint-Medard) 성당에 묻혔다. 16세기에 샤를 5세(Charles V) 황제가 성채 건설을 위해 생 메다르 성당을 철거하자 그의 유해는 생 베다스트(Saint-Vedast) 성당으로 옮겨졌고, 그 뒤로 그 성당은 생 제리(Saint-Gery)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생 제리 성당은 캉브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1일 목록에서 프랑스 캉브레에 성 가우제리코 주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프랑스에 속한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캉브레에서 굳은 신앙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뛰어났던 성 가우제리코 주교를 기념하는데, 그는 트리어의 성 마녜리코에 의해 부제로 수품되었고, 나중에 캉브레 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어 39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가우제리코는 성 제리(Gery)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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