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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월 22일 (수)연중 제2주간 수요일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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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롤로 (Charles)
    같은이름 가롤루스 , 가를로 , 까롤로 , 까롤루스 , 샤를 , 샤를르 , 찰스 , 카롤로 , 카롤루스 , 카를로 , 카를로스 ,
    축일 1월 6일
    신분 수사
    활동지역 세체(Sezze)
    활동연도 1613-1670년

       성 카롤루스(Carolus, 또는 가롤로)는 1613년 10월 19일 이탈리아 라치오주(Lazio州)의 세체에서 가난한 농부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안카를로 마르치오네(Giancarlo Marchionne)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고, 건강 등의 문제로 초등교육 정도만 마치고 부모를 도와 양치기로 일하다가 농부가 되어 부모의 일을 도왔다. 1630년 17살이 되었을 때 스스로 동정 서약을 했고,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기를 소망했던 부모의 뜻과는 달리 1635년 로마 근교 나차노(Nazzano)의 개혁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이듬해에 서원하면서 수도명을 고스마(Cosmas)에서 가롤로로 바꿨다. 그 후 그는 여러 수도원에서 주어진 일을 겸손하고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주방 담당으로 요리를 하거나 짐꾼으로 일하기도 하고 문지기 · 정원지기 · 성구(聖具) 관리자 외에도 탁발을 나가기도 했다. 그는 수도원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다시피 했지만, 그의 높은 성덕과 단순성 그리고 애덕은 놀라울 정도여서 주위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읽고 쓰는 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영적 지도자의 권유로 자신의 삶에서 체험한 것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 등 여러 권의 신비 서적이 나왔다. 1648년 10월 어느 날, 성 가롤로는 미사에 참례하던 중에 높이 들어 올려진 성체에서 나온 빛줄기가 그의 가슴에 성흔(聖痕, stigma)을 남기는 신비한 은사를 받았다. 그는 철저한 금욕생활을 실천했고, 1656년에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는 영웅적으로 주민들을 도와 그의 위대성이 더욱 돋보였다. 그는 사제는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으로부터 영적 조언을 요청받기도 했다. 특히 교황 인노첸시오 10세(Innocentius X)와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 그리고 클레멘스 9세(Clemens IX)도 그에게 영적 조언을 구하였다. 1669년 12월 31일 흉막염으로 누운 성 가롤로는 이듬해 1월 6일 로마의 산 프란치스코 아 리파(San Francesco a Ripa)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그곳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가 선종했을 때 성 가롤로의 가슴에 독특한 낙인이 나타났는데, 의사들은 이를 초자연적인 상처로 인정했고 나중에 시복 절차에 필요한 기적 중 하나로 추가되었다. 성 가롤로는 1882년 1월 22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9년 4월 12일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6일 목록에서 어린 시절부터 매일의 음식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던 세체의 성 가롤로가 동료들에게 그리스도와 성인들을 본받도록 열심히 권했으며, 마침내 소망하던 대로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가 되어 성체 흠숭과 조배에 헌신하다가 로마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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