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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이콘산책20-21: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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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5-29 ㅣ No.1073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0)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


스스로 파스카의 양이 되신 예수님

 

 

- (작품1)예수님 최후의 만찬: 모자이크 이콘, 6세기 초, 아폴리나레, 누오보, 라벤나. 반만 드러난 얼굴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편 맨 끝 사람이 반만 드러나 있어 유다 이스카리옷으로 보인다. 제자들이 유다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매섭다.

 

 

1.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étos)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하느님은 원형이시고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닮은 이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의미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분의 실제 얼굴도 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카타콤바 벽면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콘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방과 서방 교회에 전승으로 내려오는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그것을 ‘아케이로포이에토스’(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 또는 ‘만딜리온’(참된 얼굴, 거룩한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때는 서기 30년, 예루살렘에는 파스카 축제를 앞두고 전국뿐 아니라 근방의 이국 땅에 흩어져 살던 수많은 유다인이 모여들었습니다. 파스카 축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너희 자녀들이 너희에게 “이 예식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여라. “그것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제사다. 그분께서는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시어, 우리 집들을 구해주셨다.”(탈출 12,26-27) 파스카 축제 때 양을 잡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 죽음을 피하고자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를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누룩 없는 빵은 서둘러 이집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조들의 다급함을 연상케 해 줍니다. 파스카 의식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양의 피는 죄를 깨끗이 없애는 것을, 쓴 나물은 이집트 종살이의 고통스러움을, 누룩 없는 빵은 순결을 상징했습니다.

 

파스카는 가족 축제로 시작되었지만, 후일 성소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는 1년에 세 번 큰 축제 때 예루살렘 성전에 나와야 합니다. 그 후 양의 피를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는 대신, 성전에서 사제가 양의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목적은 제단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후기에는 백성의 대표자가 자신과 모든 백성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탈출’이라는 주제는 구약 전체의 시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는 하느님께서 계약으로 맺으신 당신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상기시키는 축제였습니다. 구속에서 구원으로 이어지는 이 축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육체적·정신적·신앙적 억압을 겪을 때마다 변함없는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파스카 의식에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파스카의 양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겪으신 때가 파스카 축제 기간 중이었으며 예수님 최후의 만찬도 바로 파스카 식사였습니다. 그림에는 없지만, 틀림없이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와 쓴 나물과 열두 사도와 함께 드실 구운 양이 있었을 것입니다. (작품 1)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을 것을 선언하시며, 당신의 몸과 피를 대신하는 빵과 포도주의 예식을 계속 거행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인류의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파스카 희생 제물이었음을 깨닫고 상징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때의 파스카 사건의 흐름은 하느님의 지혜였으며, 하느님 사랑에 기인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순례자 중에 그리스인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과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아마도 에데사(Edessa)에서 온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되는 장면입니다.

 

- (작품 2) 아케이로포이에토스: 34 x 25cm, 템페라,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아브가르 왕이 하나니아로부터 아마포에 박힌 예수님의 얼굴을 들고 있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지나 동방으로 나가는 관문이 바로 에데사입니다. 구약 성경의 하란(Harran)이 북쪽으로 50㎞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에데사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우르파(Urfa)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이며 상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습니다. 교회사 자료에는 에데사의 국왕이었던 아브가르 우까마(Abgar Ukkama, A.D. 30)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신하로부터 예수님께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치유를 베푼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매우 큰 관심을 갖습니다.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환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4,24)

 

아브가르 왕 자신도 중병에 걸려 예수님께 치유받고자 했습니다. 아브가르 왕은 특사 하나니아를 통해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께 속히 에데사로 오셔서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움과 박해가 있을 때는 안전하게 보호해 드리겠다고 전합니다.

 

축제 때 예수님 뵙기를 요청한 그리스인들은 먼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인 필립보에게 청합니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전하고, 이 두 사람이 함께 예수님께 전합니다.(요한 12,20-26 참조) 그러나 요한 복음서는 그리스인들이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찾아온 그 목적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해하려는 모종의 모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에데사로 망명할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권유를 거부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기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3-24) 요한 복음서는 ‘밀알의 말씀’이 대단히 중요하기에 예수님께서 그리스인들에게 하신 그 말씀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브가르 왕에게 전달한 내용은 ''나를 대신하여 제자 한 사람을 보낼 터이니 그로 인하여 병이 나을 것''이었다고 전합니다. (작품 2)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는 에데사로 가셨고, 예수님 얼굴이 찍혀있는 수건으로 아브가르 왕의 병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주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국왕을 비롯해 많은 신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비록 외경이긴 하지만 토마스 행전이 에데사 선교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제자가 누구인지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시나이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소장되어있는 이콘에는 유다로 그려져 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타대오라는 설도 있습니다. 유다는 야고보와 형제라고 하며, 이름이 비슷한 유다 이스카리옷이 있어 혼동을 피하려고 타대오라는 이름을 쓴다고도 전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5월 26일,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1)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단 하나의 얼굴’

 

 

 

- [작품1] 아케이로포이에토스(만딜리온): 템페라, 77 x 71cm, 12세기 중반,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2. 만딜리온(Mandylion)

 

탈출기(33,18 참조)에서 모세는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씀을 올렸으나, 주님께서는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라는 이름도 선포하고, 네가 요청하는 자비와 동정도 베풀겠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기를 원했어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사람의 아들’로 오시어,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신 ‘단 하나의 얼굴’이셨습니다. 그분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요한 18,37 참조)

 

그 ‘단 하나의 얼굴’을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것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콘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스러운 얼굴(聖顔)이 아마포 수건 위에 묻어났다는 의미에서 그리스어로 ‘만딜리온(Mandylion)’이라 부르고, 동방 정교회에서는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étos,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라 부릅니다. 이 두 단어는 같은 의미입니다.

 

아브가르 왕이 그 수건으로 본인의 병을 고치고, 재난이 닥쳤을 때 도시를 수호하는 성물로 에데사의 성벽 출입구에 걸게 하여 544년 에데사를 페르시아 침략으로부터 구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비잔티움 정교회의 관점에서 이콘의 기원이라는 만딜리온 형상의 전승과는 달리, 서구 가톨릭에서는 ‘베로니카의 수건’으로 다른 성안(聖顔)의 전승이 로마를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복음 중에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부인을 고쳐 주시는(루카 8,43-48 참조) 장면이 있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죽어가는 열두 살짜리 딸을 구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로 가시는데, 군중이 너무 많이 몰려 예수님을 밀어낼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중 열두 해 동안 하혈해온 여자는 본인의 병을 예수님께 요청할 기회조차 없자 그분의 옷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자 바로 하혈이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에게 손을 댔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군중이 몰려 서로 부딪친다고 말씀을 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안다”고 하십니다. 그제야 그 여인은 백성들 앞에 나서서 전후 사정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며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네 복음서에 그 부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외경 중 「니코데모 복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니코데모는 바리사이이며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으며 밤에 찾아와 예수님과 대화를 했던 사람으로서(요한 3,1-21 참조) 예수님 수난 때 예수님을 위해 변호했던 사람입니다. 그 외경에 예수님의 재판에서 무죄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베로니카라는 부인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의 무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여인이 멀리서 외쳤다. 나는 하혈을 했었다. 그래서 그의 옷자락을 만지니 열두 해 동안 고생했던 것이 멈추었다. 그때 유다인들이 소리쳤다. 우리 율법에는 여인이 증인으로 설 수 없다.”(외경 「니코데모 복음」 7장 참조)

 

베로니카는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자신의 수건으로 닦아드렸다고 전해지는 예루살렘의 한 여인입니다. 그때 베로니카의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찍혀있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베로니카1)는 라틴어로 베라 이콘(vera-icon)으로, ‘참 모습’이란 뜻이 있습니다.

 

베로니카의 수건은 후일 로마로 전해졌으나 16세기 이후에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베로니카의 수건 이야기는 빌라도 문헌인 「악타 필라티」(Acta Pilati)와 야곱부스 데 보라기네가 쓴 「황금 전설」(legenda Aurea)에 나옵니다.

 

에데사의 성안(聖顔)이 담긴 아마포도 기적을 일으키는 성물로 보관되었다가 944년 에데사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8월 16일을 ‘거룩한 얼굴 이송 축일’로 기념합니다. 그러나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했을 때 예수님 얼굴이 그려진 이 아마포도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성안(聖顔) 이콘은 사라지고 없으나, 그 모습을 본 기억으로 만들어져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거룩한 얼굴’의 이콘은 비잔틴 지역보다는 러시아 지역에서 즐겨 그려져 왔습니다.

 

12세기 후반 들어 러시아 노브고로드 지역에서는 정사각형 그리스도의 성안에 수건이 생략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이 이콘에서는 눈길의 방향이 그리스도의 위치에서 보면 오른쪽에 해당합니다. 머릿결을 따라가는 금선으로, 밑으로 내린 머리카락을 네 갈래로 구불구불하게 정돈하였습니다. 수염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밑으로 갈수록 둥글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화면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황색이지만 후광 부분은 밝은 황토색을 칠하였고 십자 문양은 황백색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윗부분의 이콘의 창문 안에는 ‘IC XC’(예수 그리스도)의 약자가 보이고, 품위와 함께 살아있는 느낌을 줍니다. [작품1]

 

 

- [작품2] 아케이로포이에토스(만딜리온): 템페라, 128,5 x 91,5cm, 젖은 수염의 구세주, 15세기,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 [작품3] 아케이로포이에토스(만딜리온): 템페라, 76,5 x 60,5cm, 레클링하우젠, 독일. 시몬 우샤코프 작품.

 

 

러시아 작품 가운데 또 다른 변화를 준 성안 중에는 ‘구세주’라는 제목으로 물에 젖은 수염과 머리를 표현한 작품도 있습니다. 턱 아랫부분의 수염을 두 갈래로 빗은 듯 그렸고 수염이 구불거리는 둥근 모습도 없습니다. 머리카락도 단순히 처리하여 단정하게 네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왜 물에 젖은 수염을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다면, 고통에 의한 땀과 흘린 핏자국이 수건을 흥건히 적시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작품2]

 

17세기 들어 러시아가 중세 시대를 벗어나며 이콘도 새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이콘의 변화를 추구하는 바람이 불면서 유럽 화가들의 교류,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인쇄된 책들이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이콘이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자 전통적인 교회와 예절에 익숙한 교인들은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그 시대의 귀족들은 전통적인 이콘보다는 서구의 사실적 이콘들을 좋아했습니다. 당시 시몬 우샤코프(1626~1686)는 궁정화가답게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왕가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실적인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장식이 화려한 수건에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이신 우리 주님’을 붉은 글씨로 써넣었습니다. [작품3]

 

각주 1) 예수님의 ‘참 모습’을 가진 여인이라는 의미로 여성 접미어 ‘아(a)’를 붙인 것이 아닐까 여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6월 2일,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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