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14: 김옥순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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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14) 김옥순 수녀 “수도생활, 기도로 이뤄지고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수도회 입회와 초기 활동
지인의 권유로 성바오로딸수도회를 다니며 수도성소의 꿈을 키웠어요. 며칠 동안 수도생활을 체험하면서 수도생활의 한 순간 순간이 제가 꿈꾸어 왔던 삶임을 알게 되었어요. 이후로 수도회에 입회하여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주어진 소임에 충실했어요.
제가 미술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출판부에서 어린이책을 출간해야 하는데 그림 작가가 완성해서 보낸 표지 그림이 너무 어두웠어요. 마감 날짜도 임박해 모두 걱정하고 있었어요. 제가 밤을 새워 표지 그림을 그려서 출판부 수녀님에게 보여 드렸더니 뜻밖에도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며칠 전에 창고 정리를 하면서 그 표지 그림 ‘암탉 니나’를 발견했어요. 43년 전 옛날 그 시간으로 돌아가 급하게 그린 그림이 수녀님들 마음에 드실지 몰라 마음을 졸이면서 보여드린 제 모습이 떠올라 혼자 웃었어요.
- ‘달밤’
내려놓은 꿈을 시작하신 하느님
「암탉 니나」 표지 그림이 계기가 되어 그림 그리는 일이 제 사도직이 되었어요. 오래전 그림에 대한 꿈을 저는 마음에서 내려놓았는데, 하느님께서는 저의 꿈을 실현하시어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행본 표지, 잡지, 삽화, 카드 등 늘 일이 많았어요.
1987년 제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그 시기에 우리 출판사에서는 어린이 그림책을 주로 일본에서 가져온 그림들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우리 그림이 있는 기도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기회가 되는 대로 기도문을 만들고 그림 작업을 조금씩 해나갔어요. 마침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그림을 다 채웠고 작은 책 한 권을 가제본해서 출판부 수녀님에게 보여드렸어요. 이렇게 해서 생애에 처음 제가 그리고 쓴 책을 출판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출판부에서 기획한 「그림이 있는 성경」 신구약을 타블로이드판 1·2·3권까지 출판하여 바오로딸 서점이 있는 각 도시마다 원화를 전시하며 책 사인회를 했던 일도 기억에 남아요.
2014년에는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에서 매주 발행하는 ‘서울주보’ 표지 그림을 의뢰했어요. 저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매주 작품 한 점을 그려내야 하니까요. 수도자로서 공동체 소임을 같이 하면서 매주 그림 한 점을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그런데 주위의 수녀님들이 제가 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바람에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이 주보 표지를 그리면서 늘 복음에 깨어있는 자세, 머릿속에는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죠(웃음).
그때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조각가분이 냉담 중이셨는데, 사모님이 가져다주는 주보에서 그림을 보곤 하셨어요. 어느 날은 주보에 있는 그림을 보기 위해 당신이 직접 성당에 가시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쁘고 감사했어요.
- ‘주님이 내 기도 들으셨네’
하루를 여는 기도가 그림의 원천
주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하느님 현존 앞에서 머물렀어요. 특히 성령께서 제 안에 오셔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활동하시고 일깨워 주시기를 기도했어요.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당신으로 저를 가득 채워주시면 저는 그 기운으로 작업에 임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갔어요.
- 김옥순 수녀
제가 많이 허탈해하고 넘어지는 것은 제 자신 안에 갇혀있을 때예요. 그러면 얄팍한 개념, 욕심, 고정관념으로 작품은 경직되고 무거우며 한없이 지루해지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고 욕심을 비워내고 고정관념의 틀을 부숴버리면서 붓이 가는 대로 내 마음을 맡겨요. 그럴 때 몰입과 함께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화를 그려왔는데 내년에 전시할 작품은 ‘평화, 고요, 여유, 충만’ 등 이런 주제로 준비하고 있어요. 조금 더 폭넓게 대중에게 다가가려고요. 저도 주제와 발맞추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하느님 자비의 역사
수도생활은 기도로 이루어지고 기도는 제가 하는 작품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도생활과 예술은 같은 맥을 이룬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 면에서 수도자로서 이 길은 저에게 큰 선물이라고 봅니다.
수도생활 47년을 살아오면서 제 삶은 하느님 자비의 역사였어요. 그 어느 것 하나 그분의 자비 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도 그분의 자비를 많이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분의 자비는 저에게 작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작업은 저를 이 소명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 김옥순(막달레나) 수녀는
1977년 성바오로딸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988년 이후 어린이 그림책 「완이의 기도」 등 세 권을 출판하면서 신앙의 감동과 애틋한 정감이 우러나오게 하는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003년 개인전을 연 이래 2023년까지 16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다양한 단체전 및 초대전에 참가했다. 2015년 가톨릭미술상 회화부문에서 본상을 받았다.
[가톨릭신문, 2024년 4월 7일, 최용택 기자] 0 4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