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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추기경 정진석 회고록54: 시노드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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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7 ㅣ No.460

[추기경 정진석] (54) 시노드 시작되다


“평신도는 사목자의 파트너” 시노드 시작하며 중요성 강조

 

 

- 2000년 5월 열린 서울대교구 시노드 사무국 축복식에서 정진석(왼쪽 세 번째)대주교가 축복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노드 사무국장 곽성민 신부, 김옥균 주교, 강우일 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정진석 대주교의 강한 의지로 서울대교구 시노드가 개최됐다. 이는 외부 세계의 새로운 시대적 환경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대응해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사목교서에서는 시노드 개최 배경을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는 말로 표현했다. 

 

사실 교회는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 이것이 정 대주교가 바라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의미였다. 2000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가톨릭 교회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늘 새롭게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에는 교회의 실수와 과오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변화하지 않는 교회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쇄신해야 한다.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는 교회에도 ‘새로운’ 사명과 역할을 요청한다. 그래서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잘 읽어야 하는 것이다. 정 대주교는 이 시대의 징표가 곧 하느님의 음성이요, 부르심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정 대주교에겐 하느님이 자신을 왜 서울대교구장으로 부르셨는지가 늘 기도의 주제였다. 그는 바로 이 시노드도 부르심의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정 대주교는 시노드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성령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통신 등의 발달은 세상을 더욱더 영향을 주고받는 공동체로 만들었다. 세상은 마치 하나의 집에 여러 군데 나눠 사는 것 같은 지구촌이 됐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소식도 삽시간에 빠르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었고, 컴퓨터의 발달은 사회ㆍ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수수방관하며 옛것만을 지키려 고수한다면 세상 안에서 교회는 더욱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이미 서구에서는 반(反) 교회, 반 성직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었고, 교회를 고리타분한 존재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무신론도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어쩌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런 어려운 교회의 상황을 극복하게 해줄 열쇠를 갖고 있을지 몰라.’ 유학 시절 가까이서 체험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력을 실감한 정 대주교로서는 시노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대단했다.

 

정 대주교가 불을 붙인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이러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울대교구는 이미 규모나 기여도 측면에서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구가 돼 있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전년도 11월에 폐막한 아시아 주교 시노드 이후 2000년대 들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시노드인 데다가 한국의 수도 교구에서 열리는 점에서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교회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물론 정 대주교는 이 시노드가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고 모든 지향을 가능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대 상황에 맞는 서울대교구의 쇄신과 발전의 씨앗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씨앗이 좋은 밭에 뿌려져 물과 양분을 얻으며 잘 성장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그 자신의 역할은 꾸준히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정 대주교는 먼저 교구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에 집중하도록 했다. 교구의 사제, 수도자, 신자들의 요구와 바람 등을 듣는 것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정 대주교는 이로써 교회 안팎의 사목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새천년기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교구 쇄신 방안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본당 사제들의 협조와 적극적인 참여에 시노드의 성패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 대주교는 2000년 1월 6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에서 열린 2000년 서울대교구 신년 하례식에서 힘을 주어 말했다.

 

“시노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제들이 먼저 관심을 갖고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해 나가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신자들의 친교를 바탕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라고 정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제들이 성직자 중심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시노드는 교구의 평신도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복음화를 위해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정 대주교가 공식 석상에서 사제단을 대상으로 시노드 전반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발언의 핵심은 사목자의 파트너로서 신자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시대적인 요청이자 흐름이었다. 정 대주교는 그 점을 교구 사제들에게 분명하게 전했다.

 

서울대교구는 새해가 시작되면서 ‘시노드 사무국’을 설치했다. 정 대주교는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서초동본당의 곽성민 신부를 사무국장으로 임명했다. 곽 신부는 시노드 전반을 관할하는 막중한 사명을 띠게 됐다. 그는 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으면서도 성격은 원만하고 많은 사제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화합형 사제였다. 교회 안팎의 흐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넓은 안목도 지니고 있는 사제였기에 정 대주교는 그를 임명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후문에는 곽 신부가 이 자리를 고사하다가 교구장 명령에 순명하는 뜻에서 어려운 직책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정 대주교는 시노드 사무국장으로 곽성민 신부가 부임하자마자 각 지구 사제회의를 통해 시노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을 벌여나가도록 지시했다. 곽 신부도 이에 화답했다.

 

“내실 있는 시노드가 되기 위해서는 교구 구성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잘 취합해야 합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가 ‘대화’와 ‘참여’의 시노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공적인 시노드 개최를 위해 서울대교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2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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