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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와 신앙: 밀리언 달러 베이비 - 관계의 복원과 화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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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5 ㅣ No.328

[영화와 신앙] 관계의 복원과 화해의 이야기 -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여전히 미국 영화는 세계 영화의 중심에 있다. 경우에 따라 ‘할리우드 영화’라는 말은 상업적 속성에 너무도 충실한, 그래서 작가주의나 예술성이라는 측면과는 배치되는 ‘대중 추수적 상품’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기실 경멸을 품은 듯한 이 말은 상당 부분 부러움과 질시를 담고 있는 것이다. 관객이 외면하지 않는 영화, 그래서 부와 때로는 명예까지 가져다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떨쳐내지 못하고 예술과 흥행 등 단선적 이분법으로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라고 할까.

 

 

아카데미가 경의를 표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작

 

지난 2월 27일 LA에서는 올 77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그야말로 알짜배기만을 가져간 영화는 바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였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년)는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스물다섯 번째로 감독한 영화이다.

 

이스트우드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무법자 시리즈’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유명해졌고, 무법자 시리즈의 현대 버전인 형사물 <더티 해리> 시리즈로 그 명성을 굳혔다. 희미한 냉소를 입가에 걸어둔 채 표정 변화 없이 총을 쏘는 마초 건맨, 법을 집행하지만 범법자 못지않게 폭력적인 형사 캘러헌의 모습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그가 감독으로 데뷔하기 위하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년)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제작사에서는 감독 보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34년이 된 지금 골든 글로브와 전미비평가협회를 감동시키고 아카데미마저 경의를 표하게 하는 역작을 만들어냈다. 일흔 다섯이라는 나이는 요샛말로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한 것일 만큼 그의 영화적 역량은 원숙해지고 노련해졌으며 깊어졌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늙은 트레이너와 그를 찾은 여자 복서 지망생 사이의 이야기이다.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자신을 찾아와 권투를 배우겠다는 매기(힐러리 스웽크 분)를 물리친다. 프랭키에게 서른이 넘은 여자가 권투를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매기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프랭키를 움직인다. 매기는 종업원으로 일하는 하층 계급 여성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권투’라는 자신의 삶을 온통 내맡길 수 있는 꿈이 있다. 물론 그 꿈은 서글프다.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났고, 오빠는 감옥에 있으며, 여동생은 아버지 없이 아이를 키우고, 어머니는 352파운드나 나가는 몸으로 시골의 중고 트레일러에서 산다. 가족이 있지만 오히려 짐이 되고, 착취하는 가족과 현재의 고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매기에게 바로 권투였다. 프랭키는 매기를 선수로서 다듬게 되고, 매기는 기다렸다는 듯 싸우는 족족 상대 선수를 쓰러뜨린다. 여기까지는 <록키>의 여성 버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진가는 그 다음부터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 영화가 아니라 멜로드라마이다. 그것도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프랭키에게는 딸이 있다. 그러나 이 딸은 영화 내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슨 일 때문인지 프랭키와 딸은 떨어져 있으며 만나지도 않는다. 프랭키는 딸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쓰지만 그 편지는 늘 되돌아온다. 매기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매기에게는 가장 행복한 기억이다. 딸이 부재한 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재한 딸이 만났으니 이들이 형성하는 관계는 자연스럽게 의사가족 또는 대안가족을 형성한다. 자신이 못내 욕망하는 것 그러나 부재한 것,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욕구가 이들 새로운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프랭키가 매기에게 이름을 주는 것으로 둘의 관계는 정점에 이른다. 프랭키는 매기에게 초록빛 복싱가운을 선사하는데 가운에는 ‘모쿠샤’(mokulsha)라고 새겨져 있다. 관중들은 ‘모쿠샤’를 연호하고 매기 역시 상기된다. 모쿠샤의 뜻이 뭔지 매기는 알지 못하지만 ‘귀여운 내 새끼’라는 뜻을 알게 된 관객은 아버지 프랭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매기가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버렸을 때 프랭키의 선택에 대하여 관객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버리고는 그에게 도덕적 비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자녀인 우리

 

이 영화를 통하여 새삼 떠오른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였다. 우리 영혼과 신앙의 아버지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프랭키가 딸과 소원하게 지내는 모습에서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잊고 지내는 우리의 모습이 중첩되고, 언제나 되돌아오는 편지를 계속 보내는 아버지 프랭키의 모습에서 늘 우리를 굽어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투영된다. 분명 우리 인간도 하느님의 ‘모쿠샤’일 텐데,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편지(메시지)를 보내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수신하지 않거나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매기가 행복했던 순간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길 때이고, 새로운 아버지(프랭키)를 만나 권투를 하며 의지했던 그 순간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는 종교적 배경이 있다. 프랭키는 23년간 미사를 거르지 않았던 신앙인이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고 있으며, 자신의 고통을 종교가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성당에 가서 젊은 신부와 믿음에 대하여 끊임없이 논쟁하지만 결코 마음의 평화를 찾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는 가톨릭이 금하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이 부분이 알려지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어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한다).

 

흔들리고 있었다 할지라도 23년간 하느님을 찾은 그가 선택한 것은 딸(매기)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행복한 기억을 빼앗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한 행위는 영화 속에서 복서였을 적에 눈을 다쳐 실명한 친구 스크랩(모건 프리먼 분)의 불행을 막지 못했다는 프랭키의 자괴감을 보여주는 데에서도 강화된다. 

 

프랭키에게 주어진 도덕적, 종교적 딜레마는 영화적으로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것임에도 신앙의 관점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프랭키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종교가 금하는 것을 거스른 것에 대하여 때로는 자위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연민과 사랑에서 나온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더욱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그런 프랭키를 가엾게 여기실 것이라는 점이다.

 

[사목, 2005년 4월호, 조혜정(영화평론가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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