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우리 사회를 위한 샤를 드 푸코의 영성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01 ㅣ No.319

[현대의 영성] 우리 사회를 위한 샤를 드 푸코의 영성 (1)


“어디에서나 나자렛 신비를 살 수 있습니다!”

 

 

“내 삶의 비밀을 자네에게 말해줌세. 1,900년 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예수님에게 내 온 마음을 빼앗겼다네. 그리고 내 일생을 다 바쳐 그분을 찾아다닌다네. 내 한계가 허락하는 만큼.”

 

마흔 살이 넘은 샤를 형제가 무신론자인 어릴 적 친구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에서 표현된 이 열정이 그의 모든 삶을 불살라버렸습니다. 예순을 넘기지 못한 형제의 굴곡진 삶을 통해 그 불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185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샤를 드 푸코는 여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전쟁 때문에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야만 했고, 부모님을 대신해서 그를 돌보아주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십니다. 그는 힘든 청년기를 보내며 신앙을 잃습니다. 어쩌면 그는 내면의 아픔에서 헤어나려고 그의 청년 시절을 쾌락과 방탕한 삶 속에 흠뻑 빠져 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샤를 형제는 22세에 장교로서 알제리에 파견되지만, 2년 뒤에 제대를 하고 위험한 모로코 탐험을 감행합니다. 그때 무슬림들이 보여준 신앙의 증거가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시는가?”

 

모로코 탐험을 마치고 프랑스에 돌아온 그는,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신앙심 깊은 가족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아 하느님을 다시 찾기 시작합니다. 그때 한 사제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형제의 아버지이자 친구가 되어주는 위블랭 신부입니다. 그의 도움으로 샤를 형제는 1886년 10월, 28세 되던 해에 회심을 합니다.

 

회심한 순간부터 그는 온 삶을 하느님께 바치고 싶어하였고, 성지순례에서 만난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모습에 매료되어 오로지 주님을 따르고 본받는 일에 일생을 겁니다.

 

샤를 형제는 먼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7년을 보내고 나서, 4년 동안 나자렛의 클라라 수녀원 문간방에서 은수생활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차츰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먼 곳에 사는 가장 버림받은 이들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1901년에 사제품을 받은 샤를 형제는 곧바로 사하라로 갑니다. 그는 먼저 아프리카 사하라의 베니아베스에서, 다음은 타만라세트에서, 그저 단순히 사막 유목민들의 친구와 형제가 되려고 애쓰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힙니다. 그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려 들기보다 형제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말로써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로 ‘복음을 외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6년 12월 1일, 마지막 순간까지 이웃 친구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를 바란 그는 호가르에서 피살당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나아가는 사람’

 

잠시도 편편한 날이 없던 샤를 형제의 삶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성소에 대한 충실함에서 우러나오는 멈추지 않는 역동적 움직임입니다. 그는 인간적 한계와 시행착오와 변화들 가운데서도, 주님에게서 받은 성소의 빛에 이끌려 자신에게 주어지는 요구에 응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의 삶에는 미리 계산하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조직을 하는 일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전적으로 불완전하고 실패로 끝날 것 같기도 합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꾸려가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신뢰하는 자세를 유지합니다. 이 모든 것이 형제를 우리에게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하며,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는 계속 진화합니다. 점점 더 빨리 그리고 가끔은 돌발적이고 난폭할 정도입니다. 엄청난 변화들과 충격들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예기치 않은 때에 우리를 쉽게 헷갈리게 하고 불안정하게 만들며, 우리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하는 상황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들이 필요하지만 해답을 찾기에 우리는 너무도 무능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되고 언제나 다시 시작하려면 새로운 기준점이 필요합니다.

 

샤를 형제는 온전한 신뢰로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의탁하였고, 그날그날 새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성소를 살려고 하였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용기와 열정을 간직하였습니다.

 

우리도 샤를 형제와 마찬가지로 삶의 한가운데에 서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큰 유연성과 개방성, 그리고 자기 쇄신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했던 샤를 형제의 삶에서 우리는 영감과 빛과 힘을 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자렛 삶의 신비

 

샤를 형제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는 것은 그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원천적인 경험, 곧 예수님의 나자렛 삶의 신비입니다.

 

회심 직후, 그는 영적 지도자인 위블랭 신부의 제안으로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베들레헴에서 성탄대축일을 보내고 예루살렘을 방문한 다음에 나자렛에 도착합니다. 바로 여기서, 비천함 속에 가려져 있는 가난한 목수, 우리 주님의 발이 다져놓은 길들을 거닐면서, 나자렛에서 사셨던 신성을 지닌 노동자의 보잘것없는 숨은 실존을 발견합니다.

 

충격입니다.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매료되었습니다. 강생신비의 상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무한한 겸손에 충격을 받습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대단치 않은 목수의 삶을 사시려고 그다지 평판도 좋지 않은 마을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샤를 형제는 자신의 성소를 이곳에서 발견하고, ‘사랑하는 형이며 주님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이 나자렛 삶을 되도록 충실하게 사는 데에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칩니다.

 

샤를 형제의 삶에 아주 결정적이었던 이 강렬한 직관을 우리는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생신비의 핵심에 바로 맞닿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어 오신 성자의 인격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그 방법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겸손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수도인 예루살렘도 명문가정도 택하지 않으시고, 외떨어진 나자렛, 평범한 가정을 택하시어 성자께서 이곳에서 자라게 하시고, 그분의 인격이 이곳에서 형성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아무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삶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십니다.

 

그러나 바로 이 삶을 통하여, 곧 나자렛 삶 안에서 하느님 사랑의 영원성을 벌써 계시하셨습니다.

 

수많은 사건들과 몸짓들로 이루어진 우리 일상의 삶은 겉보기에 하찮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삶을 예수님이 당신 몸소 사시고, 당신 삶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계시하셨기에, 우리의 삶은 아주 평범한 것이라도 아주 새로운 중요성을 갖게 됩니다.

 

샤를 형제는 이처럼 삶의 보편적 풍요를 우리에게 제시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어디에서나 나자렛 신비를 살 수 있습니다!”

 

 

선의의 사도직

 

샤를 형제가 자신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성소로 생각하는 나자렛 삶은 자연스럽게 사도직에 대한 자신의 방법론을 찾도록 합니다. 그는 죽기 몇 해 전에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나의 사도직은 선의(善意)의 사도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이 사람이 이토록 선하니, 그 사람의 종교는 틀림없이 선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일 나에게 친절하고 선한 이유를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나는 나보다 훨씬 더 선하신 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이 이렇게 처신하니, 그 주인은 얼마나 훌륭하겠는가?’라고 말하도록 하려고 내가 정말로 선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십여 년을 투아레그인들과 함께 사는 동안,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도망가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먼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이 신뢰를 해주어야만 그들과 우정을 꽃피울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작은 도움들을 주면서 그들의 삶에 점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뜨개질 등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호가르에 있는 산악지방으로 가려고 타만라세트를 떠나는 것을 망설이지 않은 것도 그들과 더 오랫동안 만날 수 있으며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노력에서 우리는 샤를 형제의 마음속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열망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느 날 그들도 하느님께서 그들의 아버지시며,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열망입니다.

 

권위적이고 자신만만한 태도와는 거리가 먼, 겸손하고 다정하고 단순하고 형제적인 접근은 복음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선함, 다정함, 형제적 애정, … 겸손과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대하는 사도”가 되는 것이 진정한 복음화의 기본적 원리임을 샤를 형제가 보여주었습니다.

 

* 안춘석 베드로 - 예수의 작은 형제회 수사. 1942년 프랑스에서 출생하였고, 예수의 작은 형제회 부총장직을 역임하였으며, 1974년에 한국으로 왔다. 안 수사가 불어로 쓴 글을 같은 수도회 이상심 바오로 수사가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경향잡지, 2011년 5월호, 안춘석 베드로]

 


[현대의 영성] 우리 사회를 위한 샤를 드 푸코의 영성 (2)


우리는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에 이릅니다

 

 

지난달의 첫 번째 글에서는 샤를 드 푸코의 생애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자신의 성소에 응답하는 그의 역동적 충직함, 예수님의 나자렛 삶의 신비에 대한 중요한 직관, 선의의 사도직을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샤를 형제의 메시지 가운데 다른 주제들을 다룹니다. 이 글이 오늘날 우리 삶에 작은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샤를 형제는 종교를 사랑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영적 지도자인 위블랭 신부가 이렇게 몇 개의 단어로 그의 삶을 표현하였습니다. 샤를 형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 이 사랑이 내 삶의 전부이며, 이 사랑이 나의 전 생애가 되기를 바란다네.”라고 그의 친구 뒤베이리에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에 대한 이 열망을 우리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 사랑’을 삶의 모토로 삼고, 그 사랑의 상징인 하트 모양 위에 그려진 십자가를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푹 빠져버린 그는 지치지 않고 복음을 읽고 또 읽고 그것을 묵상합니다.

 

‘사랑하는 형이며 주님이신 예수님’을 끊임없이 더욱 깊이 알아가며, 가능한 한 충직하게 그분처럼 살아가고자 복음을 마음속 깊이 새깁니다. 그분을 만나기에 더 없이 좋은 성체 앞에서,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조배를 하며, 그 앞에서 단순하게 반복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그의 충실한 친구 마씨뇽에게 다음과 같이 씁니다.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주님 말씀이 성경의 어떤 구절보다도 내 마음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으며 내 삶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그분이 바로 ‘이는 내 몸이다. … 이는 내 피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작은 이들과 죄인들과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찾고 사랑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까?”

 

샤를 형제는 가장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먼저 시작하라고 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잇는 강한 연계를 특별히 강조합니다. 이 두 사랑을 불가분의 것으로 여기는 점이 그의 특성입니다. “사랑.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우리는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에 이릅니다. 이 두 사랑은 항상 함께 합니다. 하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면 다른 사랑 안에서도 성장합니다. 이웃에 대한 애덕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키워갑니다.”

 

독창적인 이 생각은 우리 모두를 단순하게 하고 내적 통합을 이루는 데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타인들과 하느님을 향해 동시에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극적으로 자유롭게 해줄 것입니다. 모두를 사랑하며, 사랑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할 것입니다.

 

 

“모든 이의 형제”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다인,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 모든 주민이 나를 자신들의 형제로 생각하고 나를 모든 이의 형제로 여기는 데 익숙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1901년 베니아베스에서 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기를 원합니다. ‘형제’라는 단어는, 샤를 형제 자신을 타자로 존재하게 하는 타인들, 곧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절박한 초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인류의 이 보편적 사실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타인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타인과의 만남을 하나의 위험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전통 안에서 자신을 더욱 자신답게 하는 하나의 선물이며, 기회이고, 초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갈수록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현대사회의 도전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나 샤를 형제가 이 도전에 임했던 마음 자세를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다양성은 우리 각자에게 하나의 풍요로움이 될 수 있습니다.

 

베니아베스나 타만라세트 주민들 사이에서 묻혀 지내던 그의 삶은 현존의 대화였으며, 형제로서, 친구로서, 순례의 동반자로서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함께’ 하는 이 삶은 말로써가 아니라 행위나 타인을 대하는 마음 자세로 상대에게 호소하며, 서로를 나누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

 

“예수님이 가장 낮은 자리에 너무도 철저히 자리하고 계시기에 어느 누구도 그분에게서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위블랭 신부의 이 말은 샤를 형제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는 이 말을 평생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습니다.

 

육화되어 내려오시고, 가난한 자로 낮추시고, 배척받으시고, 유배되고, 박해받으시고, 사형당하시면서 내려만 가십니다. 항상 가장 낮은 자리에 계시면서, 전 생애를 통해 내려가기만 하시는 분을 예수님 안에서 봅니다.

 

샤를 형제가 죽은 바로 그날에 이렇게 씁니다.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라. 편안하게 그것을 받아들여라. 진솔한 단순성과 초연함은 예수님에게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며 영혼들을 위해 선을 베푸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그는 항상 가장 낮은 자리에 계시는 예수님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든 수도회를 먼저 선택합니다.

 

나자렛에서 철저히 드러나지 않게 4년을 살고 난 뒤에, 알제리에 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가장 고립되고, 가장 버림받은 이들, 교회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극단적인 이 선택들은 오늘날 이해하기 힘들고,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바라거나, 발전, 성장, 증가 등 요즈음 세간에 많이 통용되는 단어들이 지향하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최신식 기술이 제공하는 물질적인 안락함에도, 지금 우리 세상 속에서 잊어진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의 수는 점점 더 증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참한 그들 한가운데에 계시며, 그들 안에 머무시는 당신을 인정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고, 그들을 존중하면서 받아들이고 그들이 필요한 것에 관심을 갖도록 초대하십니다.

 

 

마음속 가장 낮은 곳에도 찾아오시는 주님

 

더 깊이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 내밀한 곳에 ‘가장 낮은 자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아주 성가시게 하고 힘들게 하는 각 개인의 상처들이 그곳에 있으며, 생명과 사랑에 대한 우리의 저항 또한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마음속의 가장 낮은 곳을 찾아오신 예수님에게 샤를 드 푸코의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무덤 같은, 심연 같은 우리 자신의 깊은 그곳에서도 그분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우리 삶의 ‘지옥’에까지도 함께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믿으며, 그 현존에 대한 우리 신뢰를 항상 새롭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 자신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늘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가장 절박한 증거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인,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소망이 우리 처지에 적합한 빛과 힘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샤를 형제의 삶과 메시지에서 추려낼 수 있었던 몇 개의 주제들 안에는 그의 믿음과 사랑의 아주 강한 현실감각이 깊이 배어있습니다. 오늘날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진 우리에게, 바로 이 현실 감각을 통해서, 샤를 형제가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그가 죽은 바로 그날, 사랑하는 사촌 누이에게 이렇게 씁니다.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압니다. 사실입니다. 언제고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느님은 우리를 어떤 흙으로 빚었는지를 아시고, 어미가 제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은 내치지 않으신다고 거짓말을 못하는 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탁의 기도

 

                      샤를 드 푸코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에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은 내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경향잡지, 2011년 6월호, 안춘석 베드로]



2,22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