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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어린이 노동, 과연 정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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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22 ㅣ No.845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어린이 노동, 과연 정당한 일인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절약정신

 

경제관념이 아직 없던 어린 시절, 나는 저축을 잘하는 어린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주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절약정신을 키워주려고 통장을 마련해 주신 것 같다.

 

처음으로 받은 통장은 참으로 신기했다.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통장에는 아주 적은 액수였지만 금액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뒤부터 용돈을 절약해서 통장에 입금하는 일이 꽤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은행에 가는 일이 가끔 생겼다. 명절 때나 집안 어른들이 용돈을 주시면 꼭꼭 감춰두었다가 통장에 입금하고는 불어나는 금액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나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했다.

 

모든 돈의 출처가 대부분 부모님에게서 나온 것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돈을 아끼고 모은 것은 내가 한 일이라 생각하니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동전들은 돼지 저금통에 모았다. 일 년에 한 번 결산을 할 때에는 그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은행 창구에 가져가 내밀며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입금하려고 동전 무더기를 꺼내놓는 내 모습을 보며 은행 창구 직원은 조금 짜증스러워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내가 돈을 모아 목돈을 마련하는 것이 재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모은 돈은 나중에 집안 형편이 나빠지면서 고스란히 어머니 손으로 들어갔지만 지금도 나의 경제관념은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교육된 절약정신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6학년, 고구마 장사를 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돈을 버는 일을 했다. 초등학생이 무슨 사업이냐고 묻겠지만 실제로 나는 물건을 팔았고 이익을 내는 재미를 보았다.

 

당시 초등학교에는 석탄과 나무를 때는 난로가 교실 한가운데에 한 개씩 있었는데 겨울철 가장 좋은 자리는 바로 난로 뒷자리였다. 학교에서 따로 급식을 주지 않아 점심 이후에도 수업이 있는 고학년들은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야 했고, 겨울철이면 차가워진 양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놓아 따뜻하게 데워 먹었다.

 

난로 뒷자리는 도시락을 올려놓기에도 편했고, 가장 따뜻한 자리였기에 난로 주변 자리는 누구나 앉고 싶은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몇몇 아이들만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늘 난로 뒷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고구마를 몇 개 가져왔다. 그 고구마를 점심시간 때 난로에 구워 먹었는데 그 맛이 참으로 좋았다. 나는 반 친구들 몇 명에게 함께 용돈을 모아 고구마 장사를 하자고 설득했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은 용돈으로 시장에서 고구마를 샀고, 점심시간에 교실 난로에 넣어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고구마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는 반 친구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고, 무척 인기가 있었다. 첫 고구마 장사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준비한 고구마가 순식간에 모두 팔렸고 우리가 투자한 돈보다 3배가 넘는 이익을 남긴 것이다.

 

첫 장사에서 재미를 본 나는 동업한 친구들과 이익을 나누지 않고 재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첫 장사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털어 고구마를 다시 사왔고 다음 날 다시 고구마 장사를 한 것이다.

 

그러나 반응은 전날과 전혀 달랐다. 첫날 그렇게 인기가 좋던 군고구마가 하나도 팔리지 않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결국 동업한 친구들과 물릴 때까지 먹을 수밖에…. 고구마 장사 실패는 지금도 장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느끼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광고 전단지를 돌리고 번 돈 2,000원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토요일 오전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친구와 함께 200여 장의 전단지를 돌렸다. 아파트는 우편함에 전단지를 넣었고, 개인 주택에는 대문에 붙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오후 내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보수는 장당 10원씩, 그러니까 200장을 다 돌리고 얻은 대가가 겨우 2,000원에 불과했다. 다섯 시간 정도 발품을 팔면서 고생한 대가치고는 그 보상이 너무 미약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고생한 노동의 대가가 너무나 적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당한 보수라고 생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나를 고용한 업주에게 어떤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손에 쥐어진 2,000원을 보면서 이 돈이라도 받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마친 다음 날, 나는 몸살이 났다. 토요일 오후 내내 일한 것이 무리였는지 나는 하루 종일 앓아누워 있었다. 부모님께는 자초지종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남의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른이 되어서 내가 일한 노동과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그때 그 임금이 부당하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소년의 경제활동 참가율 25.4%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청소년 노동에 대한 임금은 기존 성인 노동자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청소년 백서”에 따르면 15세 이상 24세 이하의 청소년 경제활동 인구는 2009년 말 현재 150만 7천 명으로 청소년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5.4%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5세 이상 전체 경제활동 참가율인 60.8%보다 35.4 포인트가 낮다. 이것은 학업을 지속하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지만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청소년들은 주로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한다. 그 종류를 살펴보면 전단지 돌리기가 31.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피자집 등 점원 · 배달이 9.4%, 분식점 등 점원 · 배달이 8.1%, 패밀리 레스토랑 점원이 4.1%, 편의점 점원이 3.5% 순으로 뒤를 따랐다.

 

학년별로 살펴보면 중학생의 60-70%가 전단지 돌리기에 집중된 반면, 고등학생은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 그리고 음식점 같은 서비스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청소년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정액과 초과급여를 기준으로 볼 때 19세 이하가 110만 6천 원으로 이전에 비해 많이 올랐다. 하지만 인상 비율은 2008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이에 비해 노동 강도가 높고 위험한 일을 하지만 실제로 그에 합당한 임금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난한 나라의 심각한 어린이 노동

 

가난한 나라의 상황은 더욱더 심각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의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노동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본적인 놀 권리뿐만 아니라 교육받을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말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생존을 위해 불법노동의 병폐 아래 힘들게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아직도 많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는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이들이 가난 때문에 불법노동을 하고 있으며, 정당하지 못한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은 ‘어린이 노동’에 대하여 “어린이의 건강을 손상시키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며, 착취와 학대의 위험이 있는 경제활동”이라고 정의한다. UNICEF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노동을 하는 어린이의 수(5-14세)는 무려 1억 5천8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흔히 가족의 생계를 도우려고, 또는 가난한 부모의 빚을 갚으려고 노동을 시작하게 되며,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노예처럼 혹사당한다. 어린이 노동자 가운데 공식적으로 인정된 산업현장에서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경우는 5% 미만에 불과하다.

 

노동착취를 당하는 어린이들은 대개 농장이나 공장, 건축현장, 광산, 채석장 등 열악한 환경 조건에서 일한다. 행상을 하거나 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어린이도 있고, 16세 미만의 소녀들은 부유한 집안의 가사 도우미로 일하기도 한다. 이러한 어린이 노동자 수는 아시아가 가장 많아 전체의 61%를 차지하며, 아프리카(32%)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어린이 노동 착취, 곧 현대판 노예제도가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그들을 노동현장에서 학교로 돌려보내려고 제도적으로 노력해도 당장 생존권이 달린 상황에서 그들이 학교로, 놀이터로 돌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의 아주 작은 소망은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하는 일인 데도 말이다.

 

 

어린이의 손에는 연필과 공을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어린이 노동의 심각성에 대해 ‘폭력’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해 왔다. “용납할 수 없는 형태의 어린이 노동은 다른 폭력에 비해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느 것 못지않게 심각한 일종의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은 모든 정치적 경제적 법률적인 의미를 넘어서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문제다”(“간추린 사회교리”, 296항).

 

세계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윤택하게 변화했지만, 아직도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는 어린이 노동문제에 대한 병폐가 극복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가톨릭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일터에서 어린이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단죄한다. 이러한 착취가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미소하게 보이거나 피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심각한 인간 존엄성의 침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노동’, 그것은 분명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바로 학업과 놀이이다. 가녀린 어린이의 손에는 망치가 아니라 연필과 공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 황창희 알베르토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997년에 사제품을 받고, 로마 알폰소 신학원에서 석사,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에서 사회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6월호, 황창희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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