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인간의 구원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2-10 ㅣ No.532

[현대교회의 가르침] (4) ‘인간의 구원자’ (1)


교회 사명은 ‘그리스도와 모든 사람과의 일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인간의 구원자’의 전반적 구조와 내용을 살핀 다음, 회칙이 오늘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성찰해보고자 한다.

 

 

1. 회칙의 전반적 구조와 내용 

 

‘인간의 구원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번째 회칙으로 1979년 3월 4일에 반포되었다(참고로 교황님은 재임기간(1978년 10월 22일~2005년 4월 2일) 동안 14개의 회칙, 15개의 사도적 권고, 11개의 교황령, 45개의 사도적 서한을 발표하셨다). 회칙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대한 교황님의 생각을 제시한 것으로, 이후 교황님의 사목 정책과 방향을 엿보게 해주는 중요한 문헌이다. 

 

회칙은 네 부분 - I. 위대한 유산, II. 구속의 신비, III. 구속받은 인간과 현대 세계 안의 인간 상황, IV. 교회의 사명과 인간의 운명 - 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교황께서는 전임 교황님들이 이루신 업적의 연장선상에서(I),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된 ‘구속의 신비’에 대한 숙고에서 출발하여(II) 현대 세계에 인간이 처한 상황을 분석한 후(III)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 -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 - 에 비추어 현 시대에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IV).

 

 

인간을 향한 교회의 사명 

 

교황께서 전임 교황님들로부터 계승하고자 하는 ‘위대한 유산’이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 전후로 자신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교회 스스로 갖게 된 ‘새로운 의식’이다. 세상을 향한 ‘보편적 개방’과 ‘대화’의 자세를 견지하며 교황님은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대림의 계절’에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은 무엇인가? 다음의 소제목들이 말해주듯 회칙이 바라보는 교회의 사명은 무엇보다 인간에 집중된다. ‘교회의 사명과 인간의 자유’(12항),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셨다’(13항), ‘교회로서는 모든 길이 인간에게로 통한다’(14항),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소명을 염려한다’(18항). 교회가 인간을 봉사 직무의 중심에 두는 이유는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인간의 모든 운명에 일치시키셨기 때문이다. “이 인간이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이다. […] 인간은 아무런 예외도 없이 누구나 그리스도께 구속을 받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아무런 예외도 없이 누구나, 심지어 본인이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당신에게 일치시키기 때문이다”(14항).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 일치를 이룩하고 갱신하는 것이다. “교회는 다만 하나의 목적에 봉사하고자 한다.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를 만나 뵙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13항).

 

 

교회 사명의 원천인 ‘구속의 신비’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사명을 제시하기 위해 교황님은 그리스도의 구속 신비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존재와 사명의 원천이시요, 교회의 모든 활동의 지향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성과 의지와 마음이 향할 유일한 방향은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이시다”(7항).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구속’은 어떤 사건일까? 회칙은 이 구속을 ‘새로운 창조’, 곧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 만드신 세계, 죄가 들어오자 ‘제 구실을 못하게 된’ 눈에 보이는 세계가 본래 지녔던 지혜와 사랑이신 신적 원천과 맺는 유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시키신 사건으로 제시한다(8항). 구속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강생을 통해 인간의 신비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셔서 인간의 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시고,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회복시켜주시며, 인간 본성을 고상한 품위로 들어 높이신 사건이다. 구속의 신비는 신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데, 아드님을 통해 인간과 화해하시고 성령을 통해 인간과 가까워지신 하느님 아버지의 신적 사랑(9항)과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신 ‘인간의 위대함과 존엄성과 가치’(10항)가 그 안에서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의 인간이 처한 위기의 상황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일치시키신 인간,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할 길’인 인간을 위해 투신해야 하는 교회는 동시대 사람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늘 새롭게 묻도록 요청받는다(13~14항). 회칙은 우선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을 지적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으로부터 반역과 파멸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15항). 인류가 이루어놓은 개발과 진보와는 정 반대로 인간성 자체는 타락과 퇴보의 길을 걸으며 현대인의 의혹과 불안을 가중시켜 온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인류가 이룬 진보가 동시에 인류를 향한 ‘위협’의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한다. 부유와 빈곤의 현격한 대조, 자원 고갈, 환경 파괴, 부의 축적과 악용 등은 현대 세계가 겪고 있는 ‘윤리적 무질서의 증후들’인 것이다(16항). 한편 ‘도덕적 파멸’의 세기로 드러난 20세기에 치하할 인류의 노력으로 국제연합의 창설과 인권 선언의 결의를 들 수 있는데, 그 안에 담긴 정신의 온전한 실현은 아직 먼 이상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에 참여하는 교회 

 

인간성 자체가 위기에 처한 현대 사회에서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은 무엇일까? 교황께서는 ‘구속의 신비’ 곧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그리스도의 신비에서 그 답을 발견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일치를 이루심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받게 하시고 ‘새 생명’을 부여하시며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어 인간을 그 내부로부터 변혁하신 것처럼, 인간에 대한 이와 같은 진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사람과 일치하는 것이 교회의 봉사 임무의 본질이요 핵심인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에 참여함으로써 이 봉사를 수행한다. 

 

‘예언자’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교회는 ‘신적 진리에 대한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 참여한다(19항). 교회는 진리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충실히 머물며, 말씀과 진리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이해를 통해 모든 이가 구원의 진리에 가까워지도록 인도한다. 특히 신앙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하고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고 끊임없이 또 다양하게 선포하고 전수’하며 이 직무를 수행한다. 교리교육은 이 직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사목자 뿐 아니라 수도자와 평신도 또한 교리교육 활동에 헌신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 구체적으로 참여한다. 

 

교회의 사제직 참여에서 회칙은 특별히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강조한다(20항). 성체성사는 교회의 ‘성사 생활의 중심이자 정점’인데,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희생의 신비, 그리고 인류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새 생명의 증여가 그 안에서 재현되기 때문이다.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그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은 그리스도와 합일을 이루게 되는데, 이 합일은 인간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의 화해를 이루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구속적 행위’에서 비롯된다. 한편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의 밀접한 관계는 그리스도교 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데, 회개와 용서를 통해 인간을 하느님께 온전히 돌아서도록 하는 고해성사의 도움으로, 성찬의 희생 제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가 인간 안에 더욱 충만히 재현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직에도 참여하는데, 그분의 왕다운 직분에 참여한다는 것은 종으로 섬기러 오신 그분처럼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21항). 이 직무는 특히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이 받은 봉사의 소명을 일깨우는 것이다. 곧 교황에서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의식하고 그에 응답함으로써, 특히 “각자 안에 성숙한 인간성을 생성해 내게 만드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다운 봉사에 참여한다. 

 

교황님은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부터 구원의 역사와 교회의 사명에 포함되신’ 교회의 어머니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회칙을 마무리한다(22항).

 

* 한민택 신부는 2003년 9월 사제로 서품,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기초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수원교구 복음화국 부국장(기획, 연구 담당)을 맡았으며, 지난해 12월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2월 9일,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현대교회의 가르침] (5) ‘인간의 구원자’ (2)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로 거듭나자

 

 

2. 오늘의 한국교회를 위한 교훈

 

회칙 ‘인간의 구원자’가 신앙의 재도약과 새로운 복음화를 꿈꾸는 한국교회에 전해주는 교훈을 살펴보자.

 

 

가. 성장하는 신앙을 위하여 

 

최근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 이룬 양적 성장에 버금가는 내적 성장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80~90년대에 비해 한국가톨릭교회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신자들의 영적 열기가 어느새 식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해야 교회의 영적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회칙은 이 질문에 답할 중요한 실마리를 몇 가지 제공한다. 

 

첫째로 그리스도께 중심을 두는 신앙이다. 우리가 믿는 대상은, 원대한 정치적 이념도 고상한 철학적 사상도 아닌, 인간과 사랑의 친교를 나누시기 위해 인간의 삶 안에 들어오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그분께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신앙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하며 활력을 제공받는다. 교황님은 말씀하신다. 

 

“우리의 지성과 의지와 마음이 향할 유일한 방향은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이시다”(7항). 

 

이 말씀을 묵상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예수님을 잘 알고 있으며,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분께서 이루신 구원은 내게 어떠한 것이며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는가? 나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구원을 체험하며 살고 있는가? 

 

둘째는 ‘사도직’을 자각하는 신앙이다. 세례성사와 함께 모든 신앙인은 ‘예언자’요 ‘사제’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에 참여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18항). 이 사도직을 명확히 인식한 신앙인은 교회에서 수동적인 방관자로 머물지 않고 능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오늘 많은 평신도가 교회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살고 전하도록 다그치는(2코린 5,14 참조)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는 곳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다. 그 사랑을 발견한 이는 자신 안에 실현된 구원을 깊이 체험하며, 자신의 사도직을 자각하게 되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신뢰와 관심을 두는 신앙이다. 교황께서는 인간에 대한 강한 신뢰와 관심을 보이셨다. 그것은 신앙의 내적 원리, 곧 예수님께서 당신을 모든 인간과 일치시키신 ‘구속의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예수님과 맺는 사랑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향한 관심과 사랑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자체가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하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삶에 깊이 감화된 신앙인은 동시대인의 삶 안에 들어가 기쁨과 고뇌를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산다. 

 

“교회는 다만 하나의 목적에 봉사하고자 한다.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를 만나 뵙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의 생의 여정을 함께 걸으시면서 강생과 구속의 신비에 담겨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리의 힘과 그 진리에서 비추어 나오는 사랑의 힘을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13항). 

 

그리스도께 중심을 두고, 자신의 고유한 사도직을 자각하며, 이웃의 삶 안으로 들어가 투신하는 신앙은 새벽 공기처럼 맑고 살아 숨 쉬며 주위를 변화시키는 신앙이 된다.

 

 

나. ‘한국인의 삶’에 투신하는 교회를 위하여 

 

이제 한국교회에 맡겨진 사명에 대해 숙고해보자. 교황님이 회칙에서 제시한 교회의 사명은 오늘의 한국교회에도 유효한 것일까? 

 

한국사회는 20세기 중·후반을 거치며 모든 분야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경제 대국으로, IT 강국으로 급부상하였고, ‘한류’의 세계적 확산 등으로 문화적으로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루어진 발전은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남북분열의 지속, 지역과 이념 간의 갈등, 경제적·사회적 양극화의 가속, 경제위기의 지속, 부정과 부패의 만연, 청소년 범죄와 함께 각종 사회 문제의 급증 등이 한국사회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인권, 노동, 환경, 복지 등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 대열에 들 만한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교황께서 회칙에서 지적하시듯 ‘인간성’ 그 자체에 있다. 우리 사회가 이룬 급속한 발전, 개발, 부강 이면에 한국인의 인간성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가? 지금보다 비교적 덜 발전되었던 과거의 사람보다 우리는 더 ‘인간적’으로 살며,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과도한 경쟁, 물질주의의 만연, 경제제일주의 등으로 사람보다는 돈과 일과 이해관계가 앞서고 있지 않은가? 불신의 벽이 서로를 가로막은 우리 사회는 참으로 인간답게 살기에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한국인성’ - 그것은 분명히 있다! - 은 어떠한가? 외래 문물의 무분별한 도입과 전통 문화의 단절 등으로 많은 한국인이 정체성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지 않은가? 한국인을 한국인이게끔 해 준 사상, 의식, 가치체계, 전통 등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이 이러한 위기의식조차 갖지 못한 채 산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신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가수들의 춤과 노래에 열광하고 그들을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빛낸 이들로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놓고, 자녀에게 소중히 전수해야 하는 ‘진정한 한국인다움’을 정말 우리는 그들에게서 발견하는가?

 

오늘날 한국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눈부신 발전 이면에 타락과 퇴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인간성일지 모른다. 스스로 이루어놓은 발전과 기술의 노예가 되어 버린,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 인간성이 이전보다 타락하고 퇴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의 징표’들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교황께서 지적하신 ‘윤리적 무질서의 증후들’은 더욱 높은 강도로 우리 안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35년 전보다 더 강하게 요청받고 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당신을 모든 인간과 일치시키신 것처럼, 한국교회 또한 ‘한국인성’의 위기를 겪는 세상 안으로 들어가 한국인을 살리고 한국인의 존엄과 품위를 들어 높이기 위해 온 삶을 투신하라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연대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인간의 타고난 존엄과 권리의 수호, 부정과 부패의 척결, 민주주의적 가치의 수호, 노동 현실의 개선, 가난의 대물림 극복, 환경의 보존, 과도한 물질문명과 소비문화를 거스른 새로운 문화의 창출, 불신과 갈등을 넘어선 참된 평화와 화합의 길의 개척을 위해 투신하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 우리 사회가 폭력, 살인, 자살, 성의 왜곡과 상품화 등으로 채색된 ‘죽음의 문화’를 거슬러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서로가 인간으로 존중되고 수용되는 ‘사랑의 문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교회는 자신의 삶을 내걸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의 새 계명’을 몸소 실천하는 교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을 본받아 섬기는 교회,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며 그들과 운명을 함께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모든 이가 존엄한 인격을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종이 되어 주는 교회이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인간의 구원자’는 우리가 각자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교회 안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소명이 무엇인지 새롭게 되새기도록, 35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생생하며 강한 목소리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2월 16일,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1,94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