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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49: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기도생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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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4 ㅣ No.643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49)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기도생활 ③


기도, 목숨 건 전인적 투신이자 총체적 삶의 선택



일대 결심을 갖고 기도에 임할 것

성녀 데레사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로 ‘일대 결심(一大決心)’을 꼽았습니다. 기도는 영성생활에 천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수로(水路)로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발전을 통한 인간의 충만한 실현을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허무에 불과한 인간이 하느님의 벗이자 정배, 천상적 존재로 거듭나는 이 여정은 마치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칠흑 같은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며 보낸 목숨을 건 100일의 투쟁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건 전인적인 투신이자 총체적인 삶의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의 여정이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난관이 불어 닥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굳센 마음’입니다. 성녀는 그것을 ‘일대 결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젊은 청년이 불가(佛家)에 입문해서 도(道)를 깨치기 위해 유명한 선사를 찾아가 도가 무엇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선사는 도에 대해 얘기하기는커녕 몇 년을 물 긷고 빨래하고 집 안 청소하는 것만 죽어라 시켰습니다. 그 선사를 찾아온 수많은 청년은 이 단계에서 대부분 떠나갔습니다. 오직 한 청년만 인내하며 몇 년간 그 많은 허드렛일을 성심껏 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선사는 그 청년에게 도에 이르는 길을 하나씩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선사가 보았던 것은, 과연 도를 찾아 여정을 떠난 그 사람의 심지가 얼마나 깊은지,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 만큼의 치열함을 갖고 있는지, 도를 받아들일 만한 그릇은 되는지를 보여주는 그에 합당한 마음 자세였습니다.


목숨을 건 치열한 자세

맹자는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겪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마다 어지럽고 힘들게 하느니라.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고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하느님을 향한 기나긴 여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축소판인 기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난관에 직면해서 기도를 놓지 않고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굳센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기도에 더욱 충실함으로써 하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리라는 큰 뜻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길을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굳게 다져진 일대 결심입니다. 생명수에 닿을 때까지는 무엇이 오든, 무슨 일이 생기든, 무어라 지껄이든, 고생이 아무리 크든, 누가 저편에 가 닿건, 가다가 죽건, 기진맥진이 되건, 세상이 꺼지건, 모두 상관하지 말고 줄곧 나아갈 결심만이 필요한 것입니다”(「완덕의 길」 21장 2절). 하느님은 그런 사람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주십니다.


침묵과 고독을 사랑할 것

또 한 가지, 성녀가 기도하는 사람에게 늘 권했던 지침 가운데 하나는 ‘고독’과 ‘침묵’의 환경이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요소로 기도하는 이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인도해 줍니다. 고독은 단순히 세상 소음으로부터의 도피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하느님께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침묵 가운데 있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기 위해 내 존재 전체를 모아들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분에 대한 생각과 사랑으로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고독을 습관들이는 것은 기도를 위해 아주 큰 일입니다”(「완덕의 길」 4장 9절).


주님을 위해 영혼의 모든 힘을 조율할 것

성녀가 가르치는 침묵은 단순히 외적인 침묵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대면하고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해 내 존재 전체를 삼가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의 오감을 수시로 자극해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구들을 모아들여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수련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해 굳이 사막이나 광야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첩첩산중에 있어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소용없듯이, 수많은 일과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 산다 하더라도 하느님과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 위한 우리 내면의 성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어느 곳이든 그곳이 사막이요 광야입니다. 사실 대부분 신자들은 평소 번잡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의 왕국 안에 주님을 만나기 위한 광야를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사람과 사물에 분산되어 있는 사랑의 힘을 오롯이 거둬들여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 침묵과 고독 속에서 여러분은 사랑을 속삭이는 주님의 음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고독의 끝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15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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