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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용서와 감사: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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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163

용서와 감사

 

 

머리말

 

2000년 대희년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용서와 감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마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용서하심에 감사하며, 우리도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또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은 대희년의 정신을 따르는 자세이다.

 

 

1. ‘주님의 기도’와 죄의 용서

 

‘주님의 기도’에는 일곱 가지 청원이 있다. 전반부의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과 연관된 기도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후반부의 네 가지 청원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이다.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유혹에서의 보호, 악에서 구함’이다. 

 

후반부의 우리 자신을 위한 청원 기도 중에서 용서의 청원은 아마도 ‘주님의 기도’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이는 알아듣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를 우리 것으로 삼아 실천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이 청원은 ‘주님의 기도’ 가운데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강조하시고 해설해 주신 유일한 청원이다. 곧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청원이 끝나자마자 주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예수님께서는 용서받음과 용서함의 관계에 대하여 이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 5,23-24). 카르타고의 치프리아노 주교는 이 성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은 화해하지 않는 사람의 제물을 거절하시고 그들을 제대에서 돌려보내십니다. 이는 그들이 가서 먼저 형제와 화해한 후에 하느님께 평화의 예물을 드려 평화를 얻게 하도록 하심입니다. 하느님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예물은 바로 평화와 일치가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사람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 안에 함께하는 것입니다.”1) 

 

용서를 청하는 자세와 용서하는 자세의 관계는 아주 중요해서 ‘주님의 기도’ 본문 안에도 들어 있을 정도다. 용서의 청원은 다른 청원과 달리 조건문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곧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다. 용서의 청원과 용서함은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들을 통해서 이 점을 더 깊이 묵상할 수 있다. 용서할 때에만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이 “자비롭지 못한 종”의 비유에서 더욱 밝히 드러난다. 그 종은 자기 주인에게 상상도 못할 만큼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자그마치 일만 달란트에 이르는 빚을 지고 있었다. 이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때 헤로데 왕의 일년 총수입이 대략 900달란트였다. 그리고 갈릴래아 전 지역에서 벌어들이는 세금이 약 200달란트였다. 이렇게 볼 때 그 종의 빚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빚이었다. 그 엄청난 빚을 주인은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 종은 자비심이 없어서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감옥에 집어 넣었다. 그때 하루 일당이 1데나리온이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비롭지 못한 종은 결국 형리들의 손에 넘겨졌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신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우리는 같은 가르침을 ‘탕자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와 자기 잘못을 고백하였다.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가 15,21). 둘째 아들과 아버지의 화해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큰아들 때문에 생겨난다. 큰아들은 자기 동생을 용서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죄의 용서를 우리가 이웃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과 이토록 긴밀하게 연관시키시는가? ‘주님의 기도’의 용서 청원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어려움은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하느님 앞에서 죄인임을 느끼는 것이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둘째 어려움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이웃을 진심으로 용서하기 힘든 데 있다. 우리가 용서 청원의 두 가지 부분의 내적 상호 관계를 좀더 잘 이해하면 이 두 가지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 하느님 앞에 죄인인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비유를 들려주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루가 18,10-14). 

 

이 비유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암브로시오 교부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기 잘못을 인식하여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주님을 쳐다볼 생각조차 못한 세리는 겸손히 죄를 고백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하면서 자신이 거룩하다는 것을 큰소리로 외쳐 대고 자신의 영광을 과장했으며 자신의 선행을 스스로 찬양하여 이웃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자기 업적을 인정받으러 간 셈이었습니다.”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청하는 우도(右盜)에게 다음과 같이 용서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43).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하느님 앞에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흔히 입술만의 고백으로 머물고 만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앞에 정말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 참회의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비록 우리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약점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을 모욕했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아버지로서 우리 가까이 계신다는 점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잘못으로 모욕을 당하시기보다는 오히려 그분께서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자녀들의 평안을 염려하시며 우리 생활에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는 우리 자신을 거슬러 파괴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슬프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죄는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파괴한다.

 

 

3. 용서의 어려움

 

용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말해 주는 예화 하나를 소개한다.

 

길을 사이에 두고 가게를 둔 두 장사꾼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날마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서로 상대방을 미워하며 저주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하느님께서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시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셨다. 천사가 그 중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하느님께서 들어주시고 축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재물을 원하면 재산의 축복을 주시고,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주시고, 장수를 원하면 건강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앞 집 사람을 용서하고, 그와 화해하십시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청하는 것을 두 배로 앞 집 사람에게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사꾼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천사에게 물어 보았다. “정말로 제가 청하는 것을 저에게 내려 주시고, 앞 집 사람에게는 두 배로 주시나요?” “물론이지요.” 천사가 대답하였다. 그러자 장사꾼은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 눈이 하나 멀게 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천사는 실망하여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하느님께 되돌아갔다.3)

 

우리를 늘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 또한 우리 이웃을 진정으로 용서하도록 초대한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에서부터 용서해야 한다(마태 18,35).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이 굳어져서 하느님의 자비가 들어올 수 없게 된다.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여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베드로가 주님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마태 18,21-22). 주님께서는 이처럼 용서를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그 가르치신 것을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성부께 용서를 청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용서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사람들은 용서할 줄 안다. 이 점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좋은 모범을 보였다. 교황은 자신을 암살하려고 총을 쏘았던 터키 청년 알리 악사를 감옥으로 찾아가서 용서해 주었다. 

 

우리가 용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실천 규칙들을 소개한다. 

 

첫째, 자기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뽐내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볼 때에 우리 눈에 있는 들보를 잊어서는 안 된다(마태 7,3-5 참조). 

 

둘째, 자신을 비판하면서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잘못한 사람을 대할 때에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는가?”, 또는 “그건 사람이 아니야!” 등의 비판을 피하면서,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지 말라. 

 

셋째, 비평과 판단을 조심하라. 우리 눈에는 이웃의 잘못으로 보이는 것이 전혀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넷째, 내가 베푸는 용서가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죄가 죄를 지은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듯이 용서는 용서를 받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용서할 수 있는 힘과 자비심을 청해야 한다. 우리가 판단 받지 않도록 판단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하는 청원은 우리가 평생토록 언제나 바쳐야 할 기도이다.

 

 

4. 감사의 마음

 

감사는 기도의 네 가지 요소인 찬미, 감사, 속죄, 구은 가운데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 전통이 담긴 150편의 시편 중 33편의 시편에 감사 내용이 들어 있다.4) 

 

감사와 기쁨의 삶은 배은이나 원망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감사하지 못하는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로마 1,21).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할 때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하였다. “이집트에는 묻힐 데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끌어내어 여기에서 죽이려는 것이냐?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만드느냐? 우리가 이럴 줄 알고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하지 않더냐?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편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느냐?”(출애 14,11-12) 배고프고 목마를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투덜거리며 하느님을 원망하였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출애 16,3)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 내왔느냐? 자식들과 가축들과 함께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출애 17,3) 감사할 줄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복지를 디뎌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 묻혔고, 그 후손 대에 와서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감사는 신앙의 행위이다. 신앙인은 역경과 불행 중에도 하느님의 섭리와 손길을 보기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감사하며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도 용서할 수 있다. 성조 요셉의 모범이 그 좋은 예다. 그는 형들의 시기를 받아 이집트에 팔려 가서 온갖 고초를 당하고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였으면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나를 이집트로 팔아 넘겼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나를 이 곳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마음으로 괴로워할 것도 얼굴을 붉힐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 보내신 것은 형님들의 종족을 땅 위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이 곳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십니다”(창세 45,5-8). 

 

성서에서 또한 우리는 어려움 중에도 늘 감사하라는 가르침(유딧 8,25)과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신뢰하고 감사하라는 가르침(2마카 1,11)을 볼 수 있다. 토비트 경전에는 맹인이 된 토비트가 어려운 곤경 중에도 원망하지 않고 하느님을 신뢰하고 기도함으로써 모든 역경을 다 이겨내어 아들까지 축복을 받고 본인은 시력을 되찾는 등 가정의 축복을 얻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토비 2―11장). 또한 욥 성인도 시련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 섭리에 순종하였고 결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던 것, 주님께서 도로 가져 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욥 1,21). 

 

예수님께서도 당신 몸소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다. 마태오 복음 14장 15-19절에는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실 때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고, 26장 26-29절에는 최후의 만찬 때 감사 기도를 드리셨다. 

 

사도 바오로도 감사하는 삶을 사셨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끊임없이 가르치셨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골로 3,15),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 5,16-18),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원과 간청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는 바입니다”(1디모 2,1).

 

 

5.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의 마음

 

루가 복음 17장 11-19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신 이야기가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면서 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 드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한 사람이 천당 구경을 하게 되었다. 먼저 천사들의 방을 구경하게 되었다. 첫 번째 방에 들어가니 천사들이 분주히 왔다갔다 하며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 천사들인지 물어 보았더니,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느님께 드릴 경우에 그 기도를 하느님께 날라다 바치는 일을 하는 천사들이었다. 많은 사람이 여기저기서 하느님께 필요한 은혜를 구하기 때문에 그처럼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방을 들어가 보니 이 곳 또한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천사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물어 보는 그 사람에게 천사들이 대답하였다. “이 곳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응답으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사람들에게 곧바로 전달해 주는 천사들이 있는 곳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청원의 기도를 늘 들어주십니다.” 세 번째 방문을 열어 보니 그 곳은 다른 방과는 달리 조용하였고 할 일 없는 천사들이 앉아 졸고 있었다. 그 곳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경우에 그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주는 천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감사하지 않아 천사들이 할 일 없이 잠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의 모습은 우리 가까운 현실에서도 자주 체험할 수 있다. 대구에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시내 중심부인 반월당 근처 중앙로 역에 시청에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임대 우산’ 100개를 꽂아 놓았다. 우산을 미쳐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빌려 간 100개의 우산 중 돌아온 것은 4개뿐이었다. 충북 청주시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면서 ‘양심 자전거’를 시청에서 600대를 마련하여 시내 곳곳에 놓아두고 시민들의 건강과 편의를 위해 사용하도록 했다.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자전거를 빌려 간 장소에 되돌려 달라는 시청의 간곡한 부탁에도 400대의 자전거가 사유화되어 개인의 집안으로 사라졌다.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 모습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이다.

 

 

맺는 말

 

용서와 감사는 신앙인의 근본적인 생활 자세이다. 하느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큰 사랑으로 용서하고 구원해 주심을 굳게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먼저 감사하며 또 우리 이웃을 용서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대희년을 준비하는 우리는 용서하고 감사하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임을 세상에 알리고 복음 선포에 이바지할 수 있다. 우리가 날마다 봉헌하는 미사는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고귀한 감사의 제사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준비된 자세로 정성을 다하여 봉헌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미사 성제를 중심으로 하루의 삶, 한 주간의 삶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골로 3,17). 

 

지난 해 겨울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잠든 사람이 있었다. 그가 키우던 개가 주인을 깨우려고 안간힘을 쏟다가 마지막에는 몸으로 주인의 가슴을 덮어 얼어 죽지 않도록 하였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개의 목을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였다. 이처럼 주인의 은혜를 입은 개는 주인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 주었다. 

 

만물의 영장이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은을 입은 사람은 가축이나 짐승보다 감사하는 일에 뒤져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 그룹의 정주영 씨는 고향에서 아버지의 소 한 마리를 끌고 나온 것을 천 마리로 갚으려고 노력하였다. 변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을 깨우치는 좋은 모범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스승에게 또는 은인에게 입은 은혜에 감사하며, 친구나 이웃에게서 받은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특징이다. 그러나 어째서 사람의 마음은 감사하는 데 한결같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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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주해서」, 23. 

2) 암브로시오, 「루가 복음 주해서」, 8, 72. 

3) 송봉모, 「상처와 용서 : 성서와 인간 1」, 바오로 딸, 1998년, 10면 참조. 

4) 감사의 시편 9; 26; 28; 30; 32; 33; 35; 43; 50; 56; 69; 71; 75; 79; 86; 92; 95; 100; 105; 106; 107; 109; 111; 116; 118; 119; 136; 138; 139; 140; 142; 145; 147편.

 

[사목, 1999년 9월호, 장인산(대전 가톨릭 대학교 교수, 신부, 교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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